"하지 마, 위험해"
2014년 12월 3일 부산시 사하구의 한 사회복지관 3층 비상계단에서 정모(당시 2)군의 어머니가 두 살배기 정군을 난간 밖으로 든 채 자신을 쳐다보는 이모(당시 19)군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이군은 그러나 뜻 모를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정군의 손을 놓아버렸고 두 살짜리 아기는 끔찍하게 숨지고 말았다.
2년여 뒤인 지난달 29일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A(17·여)양은 초등학교 2학년생인 B(8·여)양을 꾀어 유인한 뒤 근처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흉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이군과 A양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이군은 발달장애아(발달장애 1급)로 사건 당일 재활치료를 위해 활동보조인과 함께 복지관을 찾았다가 활동보조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A양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최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우울증으로 치료받다가 질환이 악화해 조현병 판정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에는 부적응을 이유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자퇴했지만, 치료를 위해 입원한 적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통계포털의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정신질환자 수는 2006년 2천869명에서 2015년 3천244명으로 10년 새 13.0% 증가했다.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정신질환자는 160명에서 358명으로 123.7% 급증했다.
특히 이군과 A양 사건처럼 일면식도 없는 아기와 어린이까지 희생되고 범행수법도 잔혹해지는 데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죗값을 치르는 일이 이어지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군은 지난해 11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한 점이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인정돼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재범 위험성으로 치료감호를 받게 됐다.
지난해 8월 시흥시 자신의 집에서 "악귀가 씌었다"며 흉기와 둔기로 친딸(당시 25)을 살해한 김모(55·여)씨에게는 검찰이 징역 20년을 청구했지만, 김씨가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여 법원 판단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초기 이상행동에 대해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의 적극적인 대처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신과 전문의인 최진태 의정부힐링스병원장은 "인구는 변동 없는데 정신질환 범죄가 증가한다는 것은 치료를 비롯한 관리가 안 되고있다는 뜻으로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처음 폭력성이 나타날 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신고를 포함한 적극적인 대처로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봉석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양의 범행이 정신질환에 따른 것이라면 지난해 학교를 자퇴할 때 이미 그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을 것"이라며 "정신과 진료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는데 가족 구성원이 평소 모습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잦아진다면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정신질환이나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범죄가 가볍더라도 국가 명령에 따라 재범 방지 심리치료 등을 받도록 하는 '치료명령제'를 지난해 12월부터 시행했다.
치료명령제에 따라 정신질환자나 술에 취한 사람이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법원은 형 선고나 집행을 유예하고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다.
치료명령을 받은 사람은 보호관찰관의 감독 아래 놓이고 정신건강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약물을 투여하면서 정신보건 전문가의 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이수해야 한다.
그전에는 범죄가 무거운 경우에만 치료감호에 처할 수 있었고 가벼운 경우에는 벌금형 등 처벌에 그치고 치료를 강제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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