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8일(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적나라한 삶을 그린 영화 '눈길'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인사이트] 정희정 기자 = "할머니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네요. 그 새끼들이 나쁜 놈들이지"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들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꽁꽁 숨기며 살아왔다.


세상의 시선이 무서웠던 피해 할머니들은 '위안부'로 끌려간 과거를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한 채 가슴 아픈 역사를 끙끙 앓듯이 나홀로 간직해왔다.


하지만 피해 사실은 전혀 부끄러운 일도 숨겨야 할 일이 아닌, 역사에 남아 기록돼야 할 아픈 역사라는 사실을 영화 '눈길'은 보여준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소녀들을 기억해 주세요"


지난 1944년 일제 강점기 말 충청도의 어느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가정형편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영애(김새론 분)와 종분(김향기 분).


집이 부유한 영애는 일본식 학교에 다니며 1등을 놓치지 않는 똑순이다. 반면에 종분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는 커녕 하루 한끼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언제나 영애를 부러워했다.


영애는 일본으로 건너가면 집도 주고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만주행 기차를 탄다.


종분이는 어느날 밤 괴한들의 습격으로 영문도 모른채 영애가 탄 기차에 몸을 싣게 되면서 둘은 재회한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일본군들이 주둔한 만주의 한 위안소에 도착한 두 소녀는 각자 방에 억지로 들어가게 되고, 일본군들은 줄지어 소녀들 방 앞에서 자기 순서가 되기를 기다린다.


어린 소녀들은 그곳에서 일본군에게 끔찍한 만행을 겪는다. 


각자 한 평 남짓한 방에 갇힌 소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일본군이 제공하는 사후피임약을 주기적으로 마시는 것 뿐.


영애는 똑똑한 아이였다. 일본군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며 이마저도 거절했다.


결국 자궁을 드러낸 뒤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입천장까지 헐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영애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일본군 위안소에서 만난 한 친구가 몰래 숨겨온 월병을 영애가 먹지 못하자 그 친구는 자기 입으로 월병을 꼭꼭 씹은 뒤 영애의 입에 넣어줬다.


그 무섭고 힘든 상황 속에도 소녀들은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텼다.


"죽는 게 제일 쉽다"


자살을 시도하는 영애에게 종분은 이렇게 말한다. 끝까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가 해주는 동치미 국물에 밥 말아 먹어야하지 않겠냐고 말리는 종분이.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눈물을 삼키며 위안소 생활을 이어가지만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는 소녀들이다.


어쩌면 현재까지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였을 그 한마디.


꼭 가족의 품에 돌아가고 말 것이란 꿈을 갖고 결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냈을 소녀들.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극장 안의 관객들은 모두 숨 죽인 채 흐느꼈다.


영화는 결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고 너무도 담담하게 당시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오히려 담담한 영상에서 아픈 역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슬픔은 스크린을 넘어 전해지기에 충분했다.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눈길'의 여운은 꽤 오래 이어졌다. 많은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 39분이 살아계시는 지금이라도 '눈길'이 영화로 제작됐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스틸컷


'눈길'은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지 나흘만에 2억 원을 모을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3.1절을 맞아 개봉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런 관심과 기대가 영화와 더불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실질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래야만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39분이 살아계실 동안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는다면 먼저 세상을 떠나신 피해 할머니들의 한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린 소녀들의 아픈 과거를 꼭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