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선혜 기자 = 개념 배우의 대명사 이청아가 남편의 보험금을 노리는 잔인한 아내로 무대를 찾았다.
이청아는 그간 드라마에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역으로 '지켜주고 싶은 여자' 이미지를 쌓았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한 그가 이번엔 연극에 도전했다.
이청아는 첫 연극임에도 남편의 사망 보험금 '2억'을 노리는 달콤살벌한 아내 역을 맡아 과감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극 중 남자도 홀리는 마성의 터프가이 분장까지 감행해 관객에게 웃음 폭탄을 선사했다.
관객의 배꼽을 쏙 빠지게 한 이청아의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여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네 여자는 축구에 환장하는 남편들을 축구장으로 보낸 뒤 여느 때처럼 한데 모여 수다를 떤다.
별다를 것 없던 그때, 모니카(이청아)의 전화벨이 울리고 남편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차에 깔렸어 살려줘…"라며 소리친다.
모니카는 장난으로 넘기려 한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지나(김보정)가 자신이 불과 몇십 분 전 남편들이 탄 차의 브레이크를 폭발시켜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자백한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고사에 모니카와 여자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눈물로 좌절하던 그 순간, 내일이 남편들의 생명보험 가입을 목전에 둔 마지막 건강검진 날인게 떠오른다.
여자들은 슬픔도 잠시 사망 보험금 '2억'을 위해 남편으로 위장해 아찔한(?) 건강검진을 시작한다.
이청아는 남장을 해도 어여쁜 미모가 숨겨지지 않았다. 그의 빛나는 미모 덕인지 어술한 이태리 마초남 연기는 연극의 웃음 포인트로 먹혀들었다.
누가 봐도 여성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보험공단 의사와 간호사는 일절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바보들의 행진 같은 그들의 모습에 관객은 연신 웃음이 터졌다.
특히 네 여인은 '남성스러움' 과시한다며 다리를 쩍 벌린 채 않고, 가랑이 사이를 벅벅 긁어 관객을 폭소케 했다.
심지어 보험 공단 간호사에게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다"며 성희롱적 농담을 던지며 터프함을 어필한다.
여성이 말하는 과도한 남성스러움. 여기서 '꽃의 비밀'이 단순한 코미디 연극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연일까.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연극은 우리 사회에 대입해도 어색할 게 없다.
사랑이 없어진 섹스리스 부부, 스포츠에만 미쳐 사는 남편, 그리고 남편의 바람을 알면서도 눈감고 사는 중년의 여성.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우리나라의 중년 부부와 오묘하게 맞아떨어져 자꾸만 머릿속에 '누군가'가 연상돼 답답한 기분이 든다.
특히 극의 마지막 "대통령이 바뀐들 이탈리아 여성의 삶이 달라질 리는 없으니까…"라는 대사는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살아온 여성의 삶을 내비친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며 웃다가도 '우리 엄마' 혹은 '나' 같다는 생각에 눈물을 짓곤 했다.
그래서일까. 연극은 10~20대 젊은 세대보다 40~60대 중년층에게 특히 큰 반응을 얻었다.
특히 중년여성들은 연극이 끝난 뒤 한바탕 웃어 활짝 핀 얼굴 속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연극 속 여자들이 과거 혹은 현재의 자신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2시간 내내 관객을, 특히 우리의 엄마들을 웃기고 울린 웰메이드 연극 '꽃의 비밀'은 오는 2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에서 진행된다.
김선혜 기자 seo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