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배우 문근영(30)이 긴 공백기를 깨고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돌아왔다.
문근영은 극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줄리엣'을 연기했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미모로 무대를 누빈 문근영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줄리엣' 역과 잘 어울렸다.
관객들은 'TV 스타'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문근영이 무대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아해했지만, 문근영은 보란 듯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관객들은 줄리엣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문근영의 모습에 금세 몰입했고 그녀의 진지한 눈짓, 손짓에 따라 울고 웃었다.
지난 9일 개막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원수 집안인 '몬태규가' 로미오와 '캐플릿가' 줄리엣의 죽음마저 초월한 세기의 사랑을 그린다.
셰익스피어가 써 내려간 '소네트' 형식의 주옥같은 대사를 그대로 살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을 애틋하게 풀어냈다.
원작이 지닌 고전적인 매력을 맛있게 잘 살려낸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와 무대, 의상은 현대적으로 재창작해 구태의연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주로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해온 문근영이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 없이 무대에 섰다간 대중에게 실력이 금방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근영은 데뷔 18년차 답게 안정적이고 노련했다.
특히 "오, 로미오! 변덕스러운 달에 우리의 사랑을 맹세하지 마세요. 당신의 가슴에 대고 우리의 사랑을 맹세해주세요"같은 예스러운 대사를 경쾌하게 소화할 때 그녀의 내공이 빛을 발했다.
문근영은 현대적으로 재창작되면서 부득이하게 가미된 '코믹'하고 '야한' 대사가 나올 때도 극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도록 무대 가운데에서 무게를 잡아줬다.
그 덕에 '로미오'와 친구들로 나오는 박정민, 이현균, 김성철이 자신감을 갖고 '웃긴' 대사를 자유롭게 칠 수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3가지가 없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무대, 발연기 배우, 지루함.
흰 벽과 작고 투명한 구조물만 있는 무대에 볼거리가 없다며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지만, 단순한 무대는 오히려 배우 자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손병호, 서이숙, 배해선, 김호영, 양승리 등 연기를 허투루 하는 배우가 한 명도 없어 극이 탄탄하게 흘러가며, 지루하거나 졸리지 않다.
물론 목숨 건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절절한 원작만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또 문근영과 박정민의 '키스신'만 8번이 나와 배우의 광팬이거나, 솔로라면 연말에 더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청춘 드라마 한 편 본다고 생각하면 흥미롭게 끝까지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표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후 군포, 대구, 대구로 내려가 2월까지 관객을 만난다.
'달달한 로맨스'와 '낭만'이 살아있는 연극을 보고 싶다면 웰메이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상해보길 바란다.
권길여 기자 gilye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