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면허'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강화된 운전면허 시험에서 수십 년 운전 경력자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과거 경사로와 직각 주차(T자 코스)가 포함된 시험으로 면허를 딴 적이 있었던 경험만 믿고 쉽게 달려들었다가 큰코 다친 경우다.
23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면허시험 강화 첫날 전국 26개 면허시험장에서 1천675명이 장내기능시험에 응시해 305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은 18.5%에 불과해 10명 중 8명이 '불면허'의 뜨거운 맛을 본 셈이다.
합격률이 92.8%에 달했던 '물면허' 시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강화된 시험 장내 기능시험장의 주행거리는 기존 50m에서 300m 이상으로 늘어났다. 경사로와 직각 주차가 부활했고, 좌·우회전, 신호교차로, 가속 코스가 추가돼 평가항목이 2개에서 7개로 늘었다.
'불면허' 시험 첫날 응시생들은 대부분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 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T자 코스'에서 탈락자가 속출했다.
청주운전면허시험장에서 장내기능시험에 응시한 A(60)씨는 화물차를 20년간 몬 경력이 있었지만, T자 코스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A씨는 "큰 차를 오래 몰았고 예전 시험에서 T자 코스를 통과해 본 경험도 있어서 연습 없이 왔는데, 도로 폭이 생각보다 좁아서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정부가 면허시험을 간소화한 2011년 6월 이전 직각 주차 구간 도로 폭은 3.5m였다. 이번에 강화된 시험에서는 그보다 50㎝ 줄어든 3m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나 주택가 주차 공간이 좁아진 탓에 운전자들의 실질적인 연습효과 높이기 위해 도로 폭을 좁혔다"고 설명했다.
도로 폭이 좁아진 직각 T자 코스는 과거보다 통과하기가 어려워졌다. 주차 시간이 이전보다 오래 걸려 응시생들이 당황하기 일쑤고, 조금만 방심해 차량 바퀴가 노란색 경계선을 침범하면 10점씩 감점된다.
합격 기준이 80점인 기능시험 T자 코스에서 헤매기 시작하면 금세 20점을 잃게 된다고 응시생들은 입을 모았다.
경찰청이 면허시험 강화를 예고하며 시행한 실차 실험에서는 장내 기능시험 합격률이 80%, 도로주행 시험은 56%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시험 초기 연습을 하지 않고 오는 응시생들이 많으므로 탈락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도가 정착하면 합격률이 점차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는 "탈락자들의 절반 이상이 T자 코스에서 떨어진다"면서 "최근 후방센서 등이 장착된 차량 몰던 사람에게는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충분히 연습한 후 응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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