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제도적 부패'(systemic corruption)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제도적 부패'는 부패가 보편화하다 못해 체제화된 것을 일컫는 개념으로, 한국에 부패가 만연했다는 질책인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탄핵(8월)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하야 압박을 받는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 등을 예로 들면서 많은 정부가 부패스캔들 때문에 붕괴하는 현상의 배경으로 '제도적 부패'를 들었다.
제도적 부패는 부패가 많고 심각해 한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시스템의 일부가 되며, 더 강해지면 국가 전체 시스템을 감염시켜 정직한 사람조차 부패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보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레이먼드 피스먼은 "최근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부패 스캔들을 개인의 잘못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오도하는 것"이라면서 제도적 부패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패한 지도자를 옹호한다기보다는 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제도적으로 부패한 나라에서는 부패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움직여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부패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뇌물을 주는 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비용이 크기 때문에 균형이 부패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패한 나라에서는 뇌물의 대가가 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비용-수익 균형점이 부패 쪽으로 이동한다. 이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이 부정직한 거래를 좋아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균형이 부패 쪽으로 이동했다면서 2014년 세월호의 안전점검을 피하려고 공무원과 선박 소유주가 공모한 사실, 올 1월 뇌물 수수 파동에 따른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임, 재벌이 관련된 주요 스캔들 등을 부패의 사례로 나열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독신인 데다가 가족도 없어 부패를 종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최순실이 대통령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전적 이익까지 챙긴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겹겹이 쌓인 부패와 싸우는 대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부패'이론에 의하면 지금의 혼란스러운 국면은 조심스럽지만 좋은 뉴스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부패를 추방하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면 부패의 균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려면 수사를 맡은 검사와 관련 기관이 충분히 독립된 상태에서 부패 관련 공무원들을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프 스테프스는 부패 수사 검사들을 '정직의 섬'(islands of honesty)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의 권한이 부패를 뿌리뽑을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시민사회와 연결된다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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