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위기 때마다 나라를 바르게 이끈 조선시대 '명재상 4인'

인사이트Gettyimages (좌) 황희 , (우) 채제공


[인사이트] 심민현 기자 = 2016년 11월 현재 대한민국은 나라의 뿌리가 송두리 채 뽑힐 정도로 중대 위기를 맞았다.


대한민국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눈을 속이고 아무 전문성 없는 '비선 실세' 최순실에게 국정을 맡긴 것이다.


물론 대통령 본인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 중 '쓴 소리'를 하는 충신은 한명도 없고 '달콤한 말'만 내뱉는 간신들만 가득하다는 것도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때는 왕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은 명재상들이 있다.


이런 명재상들이 있었기에 조선왕조 500년의 유구한 역사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 4인을 알아보자.


1. 황희 (1363~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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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명재상인 '방촌' 황희 선생은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선생은 태종과 세종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지켰다.


황희 선생이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오랜 시간 동안 재상 자리를 유지한 이유는 왕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바로 지적하는 소신과 청렴함이다.


황희 선생은 특히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키고 충녕대군을 책봉하려 하자 선생은 '적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원칙을 부르짖으며 반대하다 유배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면 외에는 항상 모두에게 온화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또한 청렴의 상징으로도 유명한데 24년간 재상을 지내면서도 재산 축적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죽을 때까지 비가 새는 초가집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2. 유성룡 (1542~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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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징비록으로 잘 알려진 '서애' 유성룡 선생은 1540년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강직하고 똑똑한 관료였다.


유성룡 선생은 목숨을 걸고 수시로 왕에게 진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왜군에게 경복궁을 함락당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도망갈 생각만 하자 "어찌 필부의 행동을 보이십니까?"라고 쓴 소리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유성룡 선생은 10년 넘는 세월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지만 너무나 청렴하고 정직하여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이 죽은 후 남긴 재산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선생은 자신이 몸소 겪은 임진왜란의 기록을 징비록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엮어 후대에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고 전해진다.


3. 이원익 (154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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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상 중 최고의 자리 '영의정'의 대표적 인물로 '오리' 이원익 선생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 이다.


이원익 선생은 임진왜란, 인조반정, 정묘호란 등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항상 정치적 안정과 민생을 신경 쓴 훌륭한 재상이었다.


이원익 선생 또한 위의 두 재상과 마찬가지로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은 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생각되면 목숨을 걸고 반대하다 파직당하고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청렴결백한 성품 때문에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원익 선생은 백성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대동법'을 건의한 인물로도 유명한데, 결국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한 상류층의 반대로 흐지부지 시행되다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4. 채제공 (1720~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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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 채제공 선생은 '개혁 군주' 정조를 도와 국정의 중심에서 여러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채제공 선생은 왕권이 절대적이었던 서슬 퍼런 영조 시절 사도세자를 폐위한다는 비망기가 내려오자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곤룡포를 잡으면서 간언했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자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또한 10년 이상 우의정의 자리에서 정통성이 약해 항상 신하들의 견제를 받던 정조를 보필해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정조 시대의 많은 개혁들을 성공시키는데 일조했다.


정조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채제공은 말년인 73세의 나이에 영의정에 제수되었고 죽기 1년전까지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하다 1799년 생을 마감했다.


심민현 기자 minhyun@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