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직장인 이모(27·여)씨는 운전면허를 딴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운전대 잡기가 무섭다.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다가 뒤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승용차를 미처 보지 못해 급하게 핸들을 틀다가 사고를 낼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이씨는 "장롱면허에서 다시 운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주차하려면 앞뒤로 왔다 갔다 몇번을 해야 한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운전자가 기다리면서 재촉할 때는 식은땀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 준비생이던 지난 2012년 3월 청주의 한 자동차운전면허학원에서 2주 만에 2종 보통 면허를 땄다.
장내 기능시험은 2시간짜리 의무 교육에서 운전대를 딱 두 번 잡아보고 합격했다.
와이퍼 작동 등 간단한 기기 조작을 하고, 50m 차로를 따라 주행하면 합격이었다. 도로 주행 시험도 한번 떨어진 게 전부였다.
운전면허가 이렇게 쉬워진 것은 정부의 면허시험 간소화 조치가 시행된 2011년 6월부터다.
의무교육시간은 장내 기능 15시간에서 2시간으로, 도로주행은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일부 전문학원에서는 이틀이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간소화 이후 장내 기능시험 합격률은 69.9%에서 92.8%로 껑충 뛰었다.
쉬워진 시험 탓에 응시생이 시험장에 대거 몰렸다.
2011년 6월 이전 1년 동안 면허를 새로 딴사람은 84만3천332명이었는데, 간소화 이후 1년 동안에는 약 62% 증가한 134만2천778명이 면허를 땄다.
"원숭이도 딴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생긴 '물면허'는 바다 건너 중국인까지 불러모았다.
2013년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딴 중국인은 2만4천687명으로 간소화 이전인 2010년 7천64명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면허를 따고도 운전이 미숙한 탓에 초보운전자(면허 취득 1년 미만)가 내는 사고는 급증했다.
대한교통학회 분석에 따르면 초보운전자 사고 건수는 간소화 이전 1년(2010년 6월~2011년 5월) 6천713건에서 이후(2011년 6월∼2012년 5월) 8천251건으로 약 30% 늘었다.
꾸준히 감소하던 초보운전자 10만 명당 사고율도 2009년 125.5에서 2011년까지는 90으로 감소했지만, 2013년에는 102.5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초보운전자 10만명 당 사망률도 지난 2011년까지 감소세를 보이며 1.81명을 기록했지만, 시험이 쉬워진 이후 2013년에는 2.13명으로 약 18%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청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개정, 오는 12월 22일부터 어려워진 운전면허 시험을 시행한다.
장내 기능시험의 대표적인 난코스로 꼽히는 '경사로에서 멈췄다가 출발하기'와 'Τ자 코스'를 부활시켜 합격률을 80% 수준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학과시험도 보복운전 금지, 이륜차 인도주행 금지, 긴급자동차 양보 등 최근 개정된 법령 내용이 추가되고, 문제은행도 730문항에서 1천 문항으로 늘린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발생률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지적이 나와 면허시험 강화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험 강화와 함께 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들의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보다 사고 발생률이 낮은 선진국은 운전면허 시험이 더 엄격하고 초보운전자를 관리하는 제도를 갖췄다.
의무 교육 시간은 호주 120시간, 독일 72시간, 일본 57시간으로 우리보다 4∼9배 길다.
단계별 면허제도를 도입한 호주는 정식 면허를 따려면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최소 48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연구위원은 "사고를 줄이려면 운전능력을 숙련할 수 있도록 연습 기간을 늘리고, 면허 발급 후 초보운전자를 관리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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