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6일(수)

경사로·T코스 부활…운전면허시험이 어려워지는 이유

인사이트연합뉴스


2년 차 직장인 이모(27·여)씨는 운전면허를 딴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운전대 잡기가 무섭다.


며칠 전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다가 뒤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승용차를 미처 보지 못해 급하게 핸들을 틀다가 사고를 낼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이씨는 "장롱면허에서 다시 운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주차하려면 앞뒤로 왔다 갔다 몇번을 해야 한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운전자가 기다리면서 재촉할 때는 식은땀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 준비생이던 지난 2012년 3월 청주의 한 자동차운전면허학원에서 2주 만에 2종 보통 면허를 땄다.


장내 기능시험은 2시간짜리 의무 교육에서 운전대를 딱 두 번 잡아보고 합격했다.


와이퍼 작동 등 간단한 기기 조작을 하고, 50m 차로를 따라 주행하면 합격이었다. 도로 주행 시험도 한번 떨어진 게 전부였다.


운전면허가 이렇게 쉬워진 것은 정부의 면허시험 간소화 조치가 시행된 2011년 6월부터다.


인사이트연합뉴스


의무교육시간은 장내 기능 15시간에서 2시간으로, 도로주행은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일부 전문학원에서는 이틀이면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간소화 이후 장내 기능시험 합격률은 69.9%에서 92.8%로 껑충 뛰었다.


쉬워진 시험 탓에 응시생이 시험장에 대거 몰렸다.


2011년 6월 이전 1년 동안 면허를 새로 딴사람은 84만3천332명이었는데, 간소화 이후 1년 동안에는 약 62% 증가한 134만2천778명이 면허를 땄다.


"원숭이도 딴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생긴 '물면허'는 바다 건너 중국인까지 불러모았다.


2013년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딴 중국인은 2만4천687명으로 간소화 이전인 2010년 7천64명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면허를 따고도 운전이 미숙한 탓에 초보운전자(면허 취득 1년 미만)가 내는 사고는 급증했다.


인사이트연합뉴스


대한교통학회 분석에 따르면 초보운전자 사고 건수는 간소화 이전 1년(2010년 6월~2011년 5월) 6천713건에서 이후(2011년 6월∼2012년 5월) 8천251건으로 약 30% 늘었다.


꾸준히 감소하던 초보운전자 10만 명당 사고율도 2009년 125.5에서 2011년까지는 90으로 감소했지만, 2013년에는 102.5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초보운전자 10만명 당 사망률도 지난 2011년까지 감소세를 보이며 1.81명을 기록했지만, 시험이 쉬워진 이후 2013년에는 2.13명으로 약 18%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청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개정, 오는 12월 22일부터 어려워진 운전면허 시험을 시행한다.


장내 기능시험의 대표적인 난코스로 꼽히는 '경사로에서 멈췄다가 출발하기'와 'Τ자 코스'를 부활시켜 합격률을 80% 수준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학과시험도 보복운전 금지, 이륜차 인도주행 금지, 긴급자동차 양보 등 최근 개정된 법령 내용이 추가되고, 문제은행도 730문항에서 1천 문항으로 늘린다.


인사이트연합뉴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발생률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지적이 나와 면허시험 강화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험 강화와 함께 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들의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보다 사고 발생률이 낮은 선진국은 운전면허 시험이 더 엄격하고 초보운전자를 관리하는 제도를 갖췄다.


의무 교육 시간은 호주 120시간, 독일 72시간, 일본 57시간으로 우리보다 4∼9배 길다.


단계별 면허제도를 도입한 호주는 정식 면허를 따려면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최소 48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통연구원 임재경 연구위원은 "사고를 줄이려면 운전능력을 숙련할 수 있도록 연습 기간을 늘리고, 면허 발급 후 초보운전자를 관리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