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수)

불난 집 뛰어들어 이웃 살렸더니 "남은 건 치료비 청구서"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7일 0시께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 있는 한 단독주택에서 불이 났다.


바로 뒷집에 살던 김민환(38)씨는 잠을 자려던 순간 창밖으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그는 아내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하고서 불이 난 이모(85)씨 집으로 달려갔다.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한 대로 돌과 손·발을 이용해 방과 현관문 유리창을 깼다.


그는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많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다시 뒷문으로 집 안에 들어가 집주인 이씨를 발견해 업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도착한 119 대원에게 이씨를 넘기고 119대원 1명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아직 이씨의 부인 이모(83)씨가 집 안에 있다고 해서다.


김씨는 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119대원들과 함께 부축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연기를 마셔 쓰러지기도 했다.


이들의 활약에도 할머니는 끝내 숨졌고 할아버지는 중상을 입어 치료받고 있다.


불은 주택 내부를 태워 2천여만원(소방서 추산)의 피해가 났다. 출동한 소방대는 20분 만에 껐다.


위급한 상황에서 의로운 일을 한 김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1일 현재 그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과정에서 유리를 깨다가 손 인대가 끊어져 봉합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2주가량 더 입원해야 한다.


호흡기는 다치지 않았으나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었고 지난해 수술한 척추 부위도 상태가 좋지 않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했음에도 정작 그는 병원 치료비를 걱정한다.


누구도 치료비를 당장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사상자를 예우하기 위해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좋은 취지지만 다친 사람이 치료비를 받기까지는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심사를 거쳐야 해 두 달 이상 걸린다.


자치단체는 긴급 의료비나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운용하나 재산이나 소득을 따진다.


그러다가 보니 남을 구하다가 다친 사람은 자기 돈으로 치료받아야 하는 사례가 많다.


김씨는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데다 입원하는 바람에 농장에서 키우던 닭을 돌보지 못했다.


이미 닭 150여마리가 죽었고 생계도 꾸려나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나도 할머니 손에 커서 할머니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불이 난 집에 뛰어들었고 아픈 건 생각도 안 했다"며 "그런데 사람을 구하다가 다치고 나니 행정기관이나 소방·경찰 어디도 당장 치료비를 지원하기 어렵다고 해 돈을 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나는 가족이나 친척이라도 있어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으나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며 "도움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나 최소한 남을 돕다가 다쳤으면 병원비는 빨리 지원하게끔 제도를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김씨 사정을 듣고 어떻게든 도울 방법이 없는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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