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선혜 기자 = 오늘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지 573주년이 되는 날이다.
만백성을 두루 살폈던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해 서민과 노비들까지 문자를 익힐 기회를 열어줬다.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 사시에서 굉장히 위대한 문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외국인도 배우기 쉬워하는 문자다.
세종대왕은 한글뿐 아니라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그리고 측우기 등을 발명해 백성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도왔다.
이처럼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일화도 많다.
이에 그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대왕 관련 일화 7가지를 소개한다.
1. "어린 시절 세종대왕은 성격이 고약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도(세종)는 성질이 고약해 형제들 사이에서 무시 당했다"고 기록돼있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 당시 세자(양녕대군)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의심을 받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다.
이로 인해 역사학자들은 이도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틈만 나면 짜증을 부리고, 성을 냈을 거라 예상하고 있다.
2. "악기 연주에 재능이 뛰어났다"
태종은 열일곱 살이 되는 세종대왕에게 "너는 세자가 아니어서 따로 할 일이 없으니,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라며 여러 악기를 하사했다.
이때부터 세종대왕은 거문고와 가야금에 몰입하여 형들을 가르쳐 줄 수준까지 이르렀다.
실록에 따르면 사이가 틀어졌던 세종대왕과 양녕대군이 다시 화합하는 계기는 악기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였다.
3. "세종대왕은 고기 덕후(?)였다"
고기를 너무 좋아했던 세종대왕은 농사 중 배가 너무 고파 농사짓던 소를 잡아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또 세종대왕은 수라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아버지인 태종도 죽기 전 유언으로 "아들에게는 고기 반찬을 주어라"를 남기기도 했다.
4. "조선에 흉년이 들자 초가집 생활을 했다"
조선에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세종대왕은 고통을 함께 하고자 했다.
세종대왕은 경회루 동쪽에 백성들의 집과 똑같은 작은 초가집을 지어 무려 2년간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를 염려한 신하들이 세종대왕 몰래 초가집 바닥에 짚더미를 넣었는데, 이를 알고 크게 꾸짖었다.
5. "출산 휴가제를 도입했다"
세종대왕은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이 임신을 하자 출산 전 한 달의 휴가를 부여해 만삭의 몸으로 일하지 않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고는 100일의 출산휴가를 제정했다. 그만큼 세종은 시대를 앞선 왕이었다.
남자 노비들 역시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30일간의 휴가를 부여해 육아를 도울 것을 명했다. 지금봐도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6. "세종대왕은 눈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안질(눈이 아프면선 눈곱이 끼는 병)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시력이 손상됐다.
세종실록 92권에는 "내가 눈병을 얻은지 이제 10년이나 됐으므로"라는 문구가 기록돼 있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32년 가운데 20여 년 동안 시각에 장애를 느꼈고 임종하기 전 8년 동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했다.
7. "세종대왕은 희대의 사랑꾼이었다"
세종대왕은 아내 사랑 마저 남달랐다.
아내 소헌왕후가 임신을 하자 경복궁에 '건강하게 순산하길 바란다'는 뜻의 '건순각'이라는 분만실을 선물했다.
김선혜 기자 seo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