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진 발생 때 많은 시민이 학교 운동장이나 넓은 야외 주차장으로 대피했지만, 지자체는 주차요금을 받고 학교는 화장실 문을 열어주지 않아 곳곳에서 마찰이 일었다.
지진이 일상화하는 현실에 맞춰 권역별 대피장소와 안내자를 정하고 시민 편의를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울산 중구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19일 오후 인근 경주에서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 집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자 차를 몰고 태화강 둔치의 넓은 야외주차장(545면)인 성남둔치공영주차장으로 대피했다.
얼마 뒤 '이제 안전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기분이 상했다.
지진 때문에 대피했는데 관리부스의 직원이 주차요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A씨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요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밤 지진으로 대피한 차량이 150대 정도였고 이들은 모두 14만원 정도의 주차요금을 냈다.
앞서 지난 12일 오후 8시 32분 역대 최강인 규모 5.8의 지진이 났을 때도 이 공영주차장은 예외 없이 주차요금을 부과했다.
A씨는 "재난 상황에서 자동개폐기가 차량이 나올 때마다 막고 대피한 시민에게 요금을 받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지진과 여진 발생 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대피했던 학교에서도 경비실 직원과 대피한 시민 사이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일부 학교 측이 시설 보호와 관리인력 부족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항의했다.
일부 시민은 학교 운동장 안으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가려다 제지하는 경비원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대피장소가 정해지지 않았고 지자체나 교육기관이 대피장소에서의 구체적인 대응 지침을 마련하지 않아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성남둔치공영주차장을 관리하는 울산중구도시관리공단은 폭우나 폭설 시 차량 출입 자동개폐기를 개방하고 모든 차량의 대피를 유도한다는 '재난안전관리대책'을 마련했지만, 지진 관련 규정은 없다.
울산 내 다른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 역시 지진 시 공영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등의 운영 방침이 없다.
울산시교육청도 대피장소로 주로 사용된 학교에서의 시민 대응 지침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지진이 나면 승용차는 길가에 세워두고 걸어서 대피하는 등의 개인 행동요령을 숙지하지 않은 시민의식도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울산시 관계자는 24일 "이번 지진을 통해 지진 발생 시 권역별 대피장소와 관리 공무원을 지정할 필요성을 느꼈다"라며 "교육청 및 기초단체와 협의해 학교 운동장과 공터 등 지진 대피장소에 시민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홍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행정이 지진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대피 이후 주민 안내와 대응요령을 갖추고 있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며 "지진이 현실화한 만큼 빠른 매뉴얼 정립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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