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그룹 창립 70년(일본 롯데 기준)만에 전무후무한 '최악'의 경영 공백 사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룹 비리 의혹 수사로 신동빈 회장이 20일 검찰 소환을 앞둔데다,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이달 초 10년간 400억원 이상 한국 계열사로부터 급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에 불려갔다.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이달 7~9일 세 차례나 검찰의 방문 조사를 받았고, '설상가상'격으로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말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후견인(법률대리인)이 필요하다"는 법원 결정까지 받았다.
결국 롯데가(家) 세 부자(父子)가 모두 기소돼 법정에 설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전문경영인 중에서도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家) 공백을 원활하게 메울 만한 인사를 꼽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룹 2인자였던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을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모두 비자금 수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 사건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해 7월 이후 경영권 분쟁을 수습하고 한·일 롯데를 완전히 장악한 신동빈 회장이 향후 구속 수사를 받거나 비자금 의혹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될 경우, 롯데 경영체계는 일대 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안팎에서는 향후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한·일 롯데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홀딩스의 경우 일본 임원들이 경영권을 대신 행사하는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홀딩스는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현재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도 19% 정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홀딩스의 지분 구조만 놓고 보면, 롯데 일가의 지배력은 매우 취약한 상태다.
홀딩스의 주요 주주와 지분율은 ▲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 ▲ 종업원지주회(27.8%) ▲ 그린서비스·미도리상사 등 관계사(20.1%) ▲ 임원 지주회(6%) ▲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 신격호 총괄회장 포함 가족(10% 안팎) 등으로 알려졌다.
롯데홀딩스와 상호출자 관계로 의결권이 없는 LSI를 제외하면 광윤사(28.1%)와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20.1+6%)가 3분의 1씩 지분을 고루 나눠 가진 셈이다.
문제는 신씨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확실하게 절반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신동주·동빈 형제의 개인 지분이 각각 1.62%, 1.4%로 매우 미미한 데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 신영자 롯데문화재단 이사장 등의 지분까지 포함해 신씨 오너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역시 오너가의 가족회사인 광윤사 지분(28.1%)을 더해도 40% 정도로, 신씨 일가가 지금처럼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도 과반에 이르지 못하는 구조다.
지금은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관계사가 신동빈 회장의 경영 역량 등을 근거로 '지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만약 신 회장이 사법처리된 이후에도 이런 입장을 유지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신동빈 회장 편에서 종업원지주회, 임원지주회, 관계사의 지분을 결속하고 관리하고 있는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홀딩스 사장 등 일본인 경영진들이 신씨 오너 일가가 다수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품을 경우에는 롯데 경영권은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쓰쿠다 홀딩스 사장, 카와이 카츠미(河合克美) 홀딩스 전무, 고초 에이이치 홀딩스 이사 겸 일본 롯데물산 대표 등 일본롯데 주요 경영진은 미도리상사, 패미리, 그린서비스 등 홀딩스 주주인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홀딩스의 독특한 지분 구조를 감안할 때, 향후 일본 주주들의 뒷받침을 받아 롯데 그룹 최고 경영진이 일본인으로 바뀌는 비현실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며 "한국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연 매출 90조원에 이르는 한국 롯데를 외형상 20분의 1에 불과한 일본 롯데가 지배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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