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출신 국회의원 1호'이자 '완득이 엄마'로 잘 알려진 이자스민(39) 전 의원이 '학부모'에서 '군부모'(軍父母)가 된다.
이자스민 전 의원의 아들 이승근(20) 씨는 9월 6일 전북 임실의 육군 35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6주간의 훈련을 받은 뒤 자대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승근 씨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군대인데 이렇게 관심을 쏟아주니 쑥스럽고 부담스럽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8월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아 연말에 자원입대를 신청했습니다. 요즘 입대 신청자가 많아 경쟁률을 따져 보며 입영 희망 시기를 골랐고, 날짜를 통보받아 입대하게 됐습니다. 주변의 친구도 많이 입대해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다문화가족 자녀로서 입대하는 소감을 묻자 "어머니가 유명인이어서 주목을 받을 때도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크게 표시가 나지 않아 내가 얘기하지 않으면 다문화가정 출신인지 알아채지 못한다"면서 "다른 친구들이 느끼는 심경과 똑같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승근 씨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해 1학년을 마친 뒤 현재 휴학 중이다. 대학에 들어와 선배들과 어울려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도 겪었지만 입대하는 경험은 같은 또래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처럼 '문화충격'에 가까울 수 있다.
"선배들이 '넌 군대를 가보지 않아 아직 모른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가면 인생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과도 오랫동안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21개월이나 따로 살다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겠죠. 군대에 들어가면 모든 일에 열심히 하고 틈나는 대로 운동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돌아오겠습니다."
"제대한 뒤의 기분을 미리 떠올려 보라"고 하자 "힘든 숙제를 끝낸 것처럼 후련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이자스민 전 의원 역시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심경만큼은 다른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필리핀은 의무복무제가 아니어서 가까운 사람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을 알 수가 없었어요. 한국에 살면서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군대 갔다 와야 정신 차린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고요. 잘 견뎌낼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해외 출장 갈 때 말고는 오랫동안 떨어진 적이 없어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피어납니다. 저도 입대하는 날 따라갈 생각인데 훈련소에 아들을 들여보내며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전 의원은 대학 재학 중 항해사이던 한국인 이동호 씨와 결혼해 1995년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1998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0년 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승근 씨와 딸 승연(16) 양 1남 1녀를 뒀다.
그는 2010년부터 영화 '의형제'와 '완득이', KBS TV '러브人 아시아'와 EBS TV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에 출연하고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 주무관과 다문화네트워크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으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다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2012년 5월부터 4년간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런 만큼 아들의 입대를 앞두고 여느 어머니와는 달리 만감이 교차하면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어릴 적에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난 팔다리가 멀쩡한데 왜 군대에 못 간다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그러다가 법이 바뀌어 1993년생부터 다문화가족도 입영 대상이 되자 '엄마는 나를 몇 해만 일찍 낳지 그랬냐'라며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어요. 차별받는 것은 불만이어도 막상 군대에 가게 되니 부담스러웠나 봐요(웃음)."
이자스민 전 의원은 2014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을 발의해 엄청난 항의와 비난에 시달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너희는 군대도 안 가면서 왜 권리만 찾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의 '묻지마 안티'였다.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이듬해부터 다문화가정 출신도 피부색에 상관없이 한국 국적의 남성이면 똑같이 병역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제2국민역으로 편성해 현역이나 보충역 징집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때 다문화가정 출신도 의무복무 대상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문화가정을 배려하려는 취지는 고맙지만 자꾸 구분하려고 하면 소외감을 주고 역차별 논란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방부는 현재 1천여 명의 다문화가정 청년이 현역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당사자가 부모의 출신국을 밝히지 않으면 다문화 병사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를 부대별로 조사하면 신상이 드러날 우려가 있으므로 정확한 통계는 내지 않고 있다.
2014년 육군 소대 전투병에 다문화가정 출신이 처음 선발된 데 이어 이듬해 4월 최전방 GOP(일반전초) 소대에 투입됐으며, 지난해 8월에는 다문화 후보생 3명이 육군 특수전교육단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국방부는 2025년부터 2031년 사이에는 연평균 8천518명의 다문화가정 출신 장정이 입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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