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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의 회장과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행장이 내분을 일으킨 'KB 사태'는 17일 결국 회장과 행장의 사상 첫 동반 퇴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막을 내렸다.
'관치(官治)·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은 내분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지 4개월 만에 금융권을 쓸쓸히 떠나게 됐다.
금융당국이 이들의 제재 수위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임영록 KB금융 회장이 당국의 제재에 강력히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금융권 초유의 사태가 연출됐다.
취임 때부터 각자 다른 경로의 낙하산 인사로 지목된 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갈등이 물 위로 드러난 계기는 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의혹 공방이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관계는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을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 시작,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은행 주 전산기로 IBM의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던 국민은행은 내년 7월 한국IBM과의 계약 종료를 앞두고 이미 2012년 6월부터 전담반을 꾸려 기종 결정을 검토해왔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Y)의 자문을 거쳐 차기 주 전산기 기종을 유닉스로 바꾸기로 하고 같은 해 10월 임시 운영위원회와 11월 경영협의회의 승인을 각각 받았다. 당시 경영협의회에는 이 행장도 참석했다.
유닉스로의 전환 계획은 곧바로 이사회에 보고됐고, 은행 담당 부서는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혹독한 '벤치마크테스트(BMT)'를 했다. 새 운영체제로 전환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점검하고 추가 비용을 산정하는 목적이었다.
국민은행은 BMT 결과를 종합해 4월24일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주 전산기 전환 계획안을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사회에 앞서 임시 운영위원회가 열린 4월14일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가 이 행장에게 보낸 이메일이 화근이 됐다. 이메일 내용은 기존 협상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1천500억원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2천억원대의 유닉스 전환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이 행장은 이메일을 윤웅원 KB금융 부사장(CFO),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정병기 은행 상임감사에 전달하면서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 행장의 요청은 묵살됐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4월24일 회의를 열어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유닉스 전환 계획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사회 결과에 반발한 정 감사는 즉시 감사 착수를 지시했다. 5월16일까지 진행된 내부 감사에서 감사팀은 전산기 교체 안건 보고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사보고서에는 유닉스 기반 시스템의 비용과 잠재 위험 요소를 의도적으로 축소·누락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자료 왜곡 과정에 KB금융이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 행장은 감사보고서를 채택하려고 5월19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으나, 사외이사 6명이 거부해 결국 보고는 무산됐다. 이날 이사회 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 KB금융지주 이사회 이경재 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임영록 회장의 대표이사 회장 해임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까지 가세…사상 첫 수장 동시 퇴출로 마무리
이사회 직후 이 행장은 임시 이사회 결과와 감사보고서를 '주요 경영사항'으로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당일 검사역을 파견해 특별검사에 착수했다. 부글부글 끓던 내부 갈등이 바깥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6월9일 금감원이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를 사전통보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기존의 국민카드 정보유출 사태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다른 사안과 맞물려 사실상 금융당국의 퇴출 압박이 시작된 셈이다.
사전통보 내용을 정식으로 심의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여러 차례 회의 끝에 8월22일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제재 수위를 경징계(주의적 경고)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때만 해도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심의 직후 임 회장과 이 행장 등이 1박2일 일정으로 '화합'을 위해 떠난 템플스테이 행사가 잠자리 배정 같은 사소한 문제로 파행을 빚으면서 KB 사태는 다시 수렁에 빠졌다.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조기 귀가한 이 행장은 곧바로 임 회장 측 인사로 여겨지는 김재열 KB금융 전무 등 전산 담당 임직원 3명을 고발, 극단적인 국면으로 치달았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고민 끝에 9월4일 제재심의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임 회장과 이 회장 모두 중징계(문책경고)로 상향 조정,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재차 동반 퇴진 압력을 받게 됐다.
중징계 확정에 이 행장은 곧바로 사임했으나, 금융위원회의 최종 결정까지 기다려야 하는 임 회장은 사퇴를 거부하면서 반박 기자회견을 갖는 등 금융당국과 정면으로 맞서는 형국이었다.
금융위는 임 회장을 한층 더 압박했다. 12일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 원장 등이 참여한 전체회의에서 임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는 '직무정지 3개월'로 높아졌고, KB금융의 모든 계열사에 금감원 감독관을 보내는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됐다.
여기에 금감원이 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이 가해졌지만, 임 회장은 법원에 직무정지 무효 소송을 내는 등 사퇴를 거부하고 정면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의 임 회장 해임 의결로 약 4개월에 걸친 KB사태는 두 주인공의 파국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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