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불황의 여파로 영세업체나 식당에 돈을 요구하는 '식파라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식파라치는 불량식품, 이물질이 들어간 식품 등을 신고해 보상금이나 포상금을 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와 자치단체는 식품위생법 등 신고자에게 일정 금액을 보상금 또는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업주들이 경찰 신고나 소송을 하기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오히려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들은 이런 식파라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 몰카 찍고 "업소명 인터넷에 올리겠다" 협박은 다반사
전북 전주시내에서 33㎡ 규모의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58)씨는 최근 20대 후반의 청년 2명에게 메추리알 제품을 팔았다가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김씨가 구청에서 확인한 4분50초짜리 영상에는 2인조가 몰래카메라로 문제의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들은 김씨의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메추리알 제품을 샀다.
매장을 기웃거리던 이들은 진열대에서 제품을 꺼내들어 계산한 뒤 영수증을 받아들고 가게를 빠져나간다.
김씨는 "매일같이 식제품을 확인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넘긴 제품은 그때그때 걸러내고 있다"며 "식파라치의 행태 때문에 한 달 매출에 가까운 돈을 과징금으로 내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제품을 바꿔치기 당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옴짝달싹 못하고 '혐의'를 시인해야 했다.
식파라치에 당한 전형적인 경우다.
멀쩡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거나 치아가 손상됐다고 협박해 합의금을 타내는 악질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당신네 식당에서 음식 먹고 배탈 나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치료비나 보내라."
전남 순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지난 1월 낯선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관할 보건소에 신고하거나 인터넷에 식중독이 발생한 업소라는 글을 올리겠다"는 협박도 이어졌다.
그는 김씨가 미심쩍어하자 병원에서 치료받은 것처럼 조작한 영수증을 휴대전화로 전송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영수증은 모두 포토샵을 이용해 조작한 가짜로 밝혀졌다.
소문이 퍼진다면 영업에 큰 지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한 김씨는 상대가 불러준 계좌로 10만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A(34)씨는 이런 수법으로 전국의 음식점 700여 곳에 전화를 걸어 3천100여만원을 뜯어냈다가 구속됐다.
피해 음식점만 200여 곳에 달했고 음식점 1곳에서 10만∼50만원을 받아 챙겼다.
경남 진해경찰서는 최근 주문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며 식당주인을 협박(공갈 등)한 혐의로 변모(42)씨를 구속했다.
변씨는 지난 5월 24일 창원시 진해구 한 음식점에서 만두와 떡갈비를 시켜 먹고 이튿날 식당을 찾아가 "식중독에 걸렸다"며 식당주인에게 치료비와 회사를 나가지 못한 데 따른 합의금을 요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는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데 이어 입원까지 했다.
경찰은 변씨가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밖에서 밥을 사 먹고, 구청 조사에서도 식당에서 식중독균이 나오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변씨를 구속했다.
지난해 8월에는 '맛집'으로 통하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가족이 그 집 음식을 먹고 치아를 다쳤다"고 속여 상습적으로 금품을 받아챙긴 40대가 구속됐다.
임모(44·무직)씨는 지난해 6월 대구시 중구 모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그 집에서 판매한 만두를 먹다가 돌을 씹고 임플란트가 손상됐다"고 속여 치료비 명목으로 55만원을 받아 챙기는 등 2014년 11월부터 전국 유명 제과점, 떡집, 한과 제조업체 등에서 150여 차례에 4천700여만원을 뜯어냈다.
임씨는 포털사이트에서 맛집을 검색해 범행 대상을 물색한 뒤 "치료비부터 보내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고 협박했다.
◇ "소문 퍼질까 무서워" 영세상인 '울며 겨자 먹기' 합의
이같이 피해를 본 식당 업주 등은 나쁜 소문이 돌면 영업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해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식파라치의 요구대로 돈을 줬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달로 악성 소문이 빠르게 퍼져 업주가 법적 대응으로 사실 관계를 밝히더라도 이미지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도 범법형 식파라치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다.
휴대전화 기능의 발달도 식파라치를 늘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식파라치는 갖가지 꼬투리를 잡으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 업주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온라인 카페 등에는 '식당이나 마트에서 민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기하는 법'이나 '합의금을 확실히 타내는 법'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신고를 당한 업소는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을 물게 되는 것은 물론 악의적인 소문이 퍼지면 폐업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다.
◇ 전문가 "공공기관이 데이터베이스 구축해 걸려내야"
최근 들어 식파라치를 대하는 행정기관의 자세가 '방관'에서 '공세'로 바뀌고 있다. 정도를 넘어선 식파라치의 행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식품위생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점검한다.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식당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울산시도 이런 사례를 막고자 현장에서 업주가 인정하는 명확한 경우에만 보상금을 지급하고, 이물질이 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보내올 때에는 일절 보상금을 주지 않는다.
이물질로 머리카락이 나오면 누구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식당이나 마트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손해여서 고객 요구대로 돈을 주고 무마하는 게 이득"이라며 "대기업은 법무팀이 있어 고객이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검증 과정이 꼼꼼하게 이뤄지지만, 그런 시스템이 없는 영세식당 등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한 식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과거보다 월등히 높아졌고 SNS도 발달하다 보니 명성에 민감한 식당을 상대로 갑의 위치에서 위협할 수 있는 식파라치 또는 식파라치를 빙자한 공갈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대부분 식당이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식파라치가 악의를 갖고 접근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라면서 "제보를 받는 공공기관이 제보자들의 활동 내용이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들 행위에 악의성이 있는지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전문적이고 악의적인 식파라치를 근절하기 위해 과징금의 최대 20%까지 지급하던 보상금을 내부 신고자에게만 지급하도록 공익신고자보호법을 개정해 지난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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