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사고 / 연합뉴스
2000년 이후 한국 대형재난의 96%가 서울 이외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 시기 서울·인천·부산 등 전국 7개 특별·광역시(세종시 제외)에서 발생한 대형재난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신종 인플루엔자 등 전국적인 재난과 중국 지안 공무원 버스추락사고 등 해외 대형재난은 제외한 결과다.
지난달 발간된 한국위기관리논집(12권 4호)에 실린 최충익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의 '한국의 대형재난 발생 특성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보면 한국의 대형재난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했다.
최 교수는 그 시기를 ▲ 1기: 1945년∼1960년(사회적 혼란과 대형재난, 62건) ▲ 2기: 1961년∼1980년(경제적 성장과 대형재난, 139건) ▲ 3기: 1981년∼2000년(초대형재난의 사회적 충격, 121건) ▲ 4기: 2001년∼2015년(강화된 대응체계, 여전히 반복되는 대형재난, 38건)로 분류했다.
사망·실종자를 합쳐 1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고를 대형재난으로 규정했다. 국민안전처 국가재난 정보센터의 자료와 손해보험협의회에서 발간한 '손해보험 60년사'를 기초 자료로 활용했다.
우면산 산사태로 아수라장된 아파트 / 연합뉴스
4기에 해당하는 2001년∼2015년 지역별 대형재난 발생 건수(총 26건)를 보면 경북 7건, 경기·전남 각 5건, 경남·강원 각 2건, 서울·인천·부산·대구·전북·제주 각 1건, 울산·광주·충남·충북 0건으로 집계됐다.
대형재난이 경북, 경기, 전남지역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전체의 62.96%를 차지했다.
인구 1천만의 대도시인 서울에서는 단 한 차례 대형재난이 발생했는데, 바로 2011년 7월 27일 벌어진 우면산 산사태다. 이 사고로 1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부산과 인천에서는 각각 2009년 11월 실내사격장 화재, 2010년 7월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고가 있었다.
이 기간은 방재시설 부족 또는 제도적 미비보다는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인한 대형재난이 많았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 연합뉴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2015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사망·실종자 213명)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하철 화재 사고(사망자 300명)에 이은 전 세계 역대 2위 규모의 지하철 사고로 기록됐다.
예전에 일어났던 사고들이 데자뷔처럼 반복되면서 발생 원인 역시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것도 특징으로 꼽혔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콘서트 관람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일시에 몰리는 바람에 11명이 압사하는 사고는 1960년 서울역 압사사고 이후 45년 만에 다시 발생한 것이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역시 1970년 여수 앞바다 남영호 침몰사고의 반복이란 지적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1980년 이후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한 대형재난 발생 건수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음에도 재난별 사망·실종자 수는 1980년대보다 컸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다.
이는 1980∼1990년대(3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압축적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실공사 등으로 인한 대형재난과는 원인이 뚜렷이 구분됐다.
붕괴된 성수대교 / 연합뉴스
3기에는 '한국 대형재난 일지'에 등장할 만한 대형 참사가 연속적으로 발생해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1994년 10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이 숨지고, 이듬해인 1995년 6월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1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이후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로 55명이 숨지는 등 이때부터 한국 사회는 대형재난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시기 부랴부랴 재난관리법이 마련되고 재난관리 업무를 총리실에서 직접 다루는 등 재난대응체계를 갖추게 됐다.
1기와 2기는 국가 시스템 미흡과 인프라 부족, 재난대응 체계의 뒤처짐 등이 재난의 주원인이었다.
최 교수는 29일 "2000년대 이후 수도 서울의 재해 양상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면서 "안정화된 도시화와 도시관리시스템 구비로 인해 충분한 기반시설 여건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재난 발생 이후 원인을 파악해 관련 방재시설을 설치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대응체계만으로는 대형재난 감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개인과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는 교육과 학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