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3일(월)

'알콜중독 아빠' 신고한 아이들, 아파도 병원 데려갈 보호자가 없다

Facebook '경찰청(폴인러브)'

 

경찰관의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A(15) 양은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부어오른 오른쪽 발등을 꼭꼭 감춘 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A 양 가족을 5년간 관리한 구청 사회복지사도, 학교 선생님도 신발에 가려진 여중생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

 

8년 전 교통사고로 다친 발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후유증을 안고 사는 A 양의 사연은 12살 남동생과 함께 시설에 들어가 있을 테니 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당뇨합병증을 치료해달라고 112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거부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병원에 입원시킨 경찰은 어린이날을 이틀 앞두고 남매를 아버지에게 데리고 가던 길에 뒤뚱거리듯 절뚝거리는 A 양의 어색한 걸음걸이를 발견했다.

 

"A 양 남매는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가 아니었다면 사회로부터 구제조차 받지 못했을 겁니다."

 

윤재상 광주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A 양의 발을 처음 봤던 순간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10여년 전 이혼하고 가족을 떠난 어머니, 당뇨합병증으로 다리 근육이 말라 집안에서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게 일상인 아버지, 자신마저 없으면 진짜 고아가 되고 말 남동생.

 

휴일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게 일상의 행복이라는 A 양의 수술비를 마련해달라는 경찰의 호소에 시민 140여명이 응답했다.

 

지난 13일 개설된 A양의 후원계좌에는 26일 현재까지 '1004원'에서 100만원까지 총 1천400만원 상당의 성금이 모였다.

 

동네의원과 지역 종합병원 두 곳의 진단에 따르면 A양은 정형외과·성형외과·피부과 전공의로부터 최소 2차례 이상 수술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A양과 남동생이 도움을 준 경찰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 Facebook '경찰청(폴인러브)'

 

발을 살펴본 의사들 모두 최종진단과 수술은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받기를 권하면서 치료는 시민 후원금이 쌓여가는 와중에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A양이 사는 광주 남구의 아동 그룹홈 원장에게 수술과 재활치료로 이어질 서울에서의 병원 생활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그룹홈의 원장은 A양뿐만 아니라 다른 여학생 1명을 혼자 돌보고 있다.

 

A양 남매는 아버지가 전남 화순의 병원에 입원한 지난달 25일부터 각각 다른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매는 2012년 여섯 달가량 보냈던 그룹홈에 함께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정원이 꽉 차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됐다.

 

4년 전 A 양 남매가 살았던 그룹홈은 B 원장을 포함해 3명의 보육교사가 7명의 아이를 돌본다.

 

B 원장은 A 양의 병간호는 물론이요, 남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다며 구청 등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룹홈 원생을 7명으로 제한한 보건복지부 운영지침이 바뀌지 않는 한 A 양은 B 원장의 돌봄을 받을 수 없다.

 

기존의 원생 1명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대안이 있긴 하나, 누구도 그 방법을 바라거나 실천으로 옮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A양 남매처럼 각각 다른 시설에서 생활하는 형제자매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그룹홈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분야 사업 매뉴얼이 바뀌지 않는 예외 규정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원장은 "고심 끝에 한 아이를 조부모에게 돌려보내기로 했다"며 "오래 지체된 만큼 최대한 빨리 행정절차를 마무리 해 A 양을 서울의 큰 병원으로 데려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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