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관동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71명 명단 발견됐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 연합뉴스

 

1923년 간토(關東·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사람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이 포함된 사망자 명부가 일본 공식문서에서 발견됐다.

 

이 71명의 명부에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 공식 확인한 간토 조선인 대학살사건 피해자 중 일부와 당시 학살 증언 내용과 일치하는 조선인 이름이 포함돼 있다.

 

이는 다카노 히로야스(高野宏康) 홋카이도 오타루 상과대학 교수와 조선인 학살의 진상 규명에 반평생을 바친 일본인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씨, 오충공(吳充功) 다큐멘터리 감독 등에 의해 9일 공개됐다.

 

이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지진 이듬해인 1924년부터 일본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신고를 받아 작성한 피해자 기록 카드인 '지진재앙 임시사망자명부'(震災假靈名簿 震災死亡者調査表·진재가령명부 진재사망자조사표)에 조선인 기록이 포함된 것을 2008년 다카노 교수가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 도쿄도위령당의 납골당 창고에서 발견했다.

 

다카노 교수는 당시 도쿄도위령협회가 보관하는 일본인 희생자 카드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조선인 카드가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니시자키씨가 조선인 명부를 꾸준히 정리했다.

 

5만장에 달하는 사망자명부 조사표 가운데 니시자키씨가 현재까지 추려낸 조선인은 71명이다. 중국인 등 외국인까지 합치면 모두 100여 명이 된다. 조사가 더 이뤄지면 조선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묘송씨 가족 사망자명부 / 제공 = 다카노 히로야스·니시자키 마사오 

 

이 사망자 명부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도쿄시 진재구호사무국이 보상금을 주기 위해 피해자 신고를 받아 작성한 것이다.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적, 사망주소 등이 적혀 있다. 

 

특히,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1950년대 한국 정부가 작성한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명부 중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지원위원회)'가 공식 확인한 피해자도 일부 포함됐다.

 

한국과 일본의 기록에서 모두 확인된 학살 추정자는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의 박덕수, 박명수씨 등이다.

 

이외에도 간토 조선인 대학살 때 도쿄 고토(江東)구 가메이도(龜戶) 경찰서에서 자행된 학살을 기록한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인 제주도 대정읍 인성리 출신의 조묘송(趙卯松·1891∼1923·당시 32세)씨 가족도 포함됐다.

 

당시 증언과 이후 이뤄진 연합뉴스 추적조사(2014년 1월 21일자 '91년 전 관동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 찾았다' 제하 보도)를 통해 조씨 일가족 5명이 몰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자료에는 조묘송씨와 그의 아내 문무연(文戊連·1885∼1923·38세), 그의 동생 조정소(趙正昭·1900∼1923·23세) 3명의 이름만 포함됐다.

 

증언은 '일본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빼 조선인 83명을 한꺼번에 죽였으며 이때 임신한 부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부인의 배를 가를 때 배에서 어린 아기가 나왔다. 그 어린 아기까지 찔러 죽였다'고 전하고 있다. 만삭의 상태에서 학살당한 부인은 바로 조묘송의 아내 문씨였다.

 

                        제주 대정읍 민적부와 일본 사망자 명부 / 연합뉴스

 

정혜경 전 지원위원회 조사과장은 "당시 지진이 발생했던 곳은 도쿄 중심부였고 조선인은 주로 도쿄 외곽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대량 학살됐기 때문에 조선인의 경우 순수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일본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겠다고 신고를 받았으나 조선인의 경우 학살로 인한 두려움이 커 많은 사람이 신고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주현 청암대학교 교수는 "자료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 명부에 지진으로 희생된 조선인과 학살된 조선인이 섞여 있을 수 있다"며 "자료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록이 발견된 요코아미초 공원의 도쿄도위령당은 1923년 간토 대지진과 1945년 연합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 때 일본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납골당으로 일본인 희생자 수만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

 

이곳은 1920년대 육군피복공장과 인근에 조선인 노동자 밀집지가 있던 지역으로, 간토대지진 당시 불길이 번지면서 일본 주민과 이 일대로 피난해 온 조선인 노동자 등 3만8천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

 

요코아미초 공원 한쪽에는 간토대지진 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

 

다카노 교수와 니시자키씨는 "진재사망자조사 카드가 있다는 것은 조씨 가족의 유골 역시 이 일대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의 유족들이 위령당 방문과 기록 열람을 원한다면 일본에서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록이 2008년에 발견됐으나 한일 양국 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이전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며 "중요한 것은 증언에 나오는 희생자의 이름과 본적이 일치하는 사망자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인 대학살을 주제로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재일동포 오 감독은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일대와 다른 지역에서 학살된 한국인 시신이 한꺼번에 이곳으로 옮겨져 묻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며 "위원회가 지난해 해산됐지만 본격적인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