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bank
작은 규모의 IT기업에 다니는 이정수(35·가명)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어버이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 감독의 꿈을 꿨다.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10년 가까이 영화판을 떠돌았으나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늦은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배워 가까스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왔다. 부모님 용돈 없이 생활한 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생 때까지는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에 용돈 5만원이라도 드렸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부담스럽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빨리 전세자금을 모으고 차를 사 결혼하기 위한 '스펙'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이씨는 "3년 전 어버이날 때 부모님이 선물은 됐으니 삼겹살이나 한 판 사달라고 하시더라"라면서 "요즘도 부모님이 '네 코가 석 잔데 무슨 어버이날이냐'라며 챙기지 말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취업난과 계속되는 경기침체에 고통받는 20∼30대 청년들에게 이번 가정의달 연휴는 부담스럽다. 그동안 키워준 부모님에게 번듯한 선물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은 어버이날은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내고 선물을 드리기보다는 이씨처럼 아예 어버이날을 '없는 날'인 셈 치거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간단히 감사 인사를 보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35)씨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카네이션 사는 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지금 불효하더라도 얼른 합격해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리고 싶다"면서 "올해도 작년처럼 선물 대신 진심을 담아 감사드린다는 전화 한 통 드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재수 끝에 연세대에 입학한 이모(23)씨는 2학년이 된 올해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이른바 '명문대생' 타이틀을 달고도 취업 전선에서 맥을 못추는 선배들을 수없이 봤다.
이씨는 "어버이날 챙기려 하면 부모님이 '그 돈으로 책이나 한 권 더 사보라'고 하신다"라면서 "요즘 어버이날에 선물이나 카네이션 갖다 드리는 친구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나마 여자애들은 좀 챙기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직장인과 대학생 2천9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8.3%가 5월 기념일 중 가장 부담스러운 날로 어버이날을 꼽았다.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