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흙수저'에서 '대학총장' 된 여성이 매달 월급을 기부하는 이유

연합뉴스

 

1963년 초겨울. 인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수인선 기찻길을 따라 남루한 차림의 11살 소녀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제일제당 인천공장 근처에 들렀다.

 

그곳에서 버려진 고철과 쇳가루를 부지런히 주워 모으면 얼마간의 공책과 연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초등 6학년 때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소녀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장사로 1남 4녀를 키우는 어머니를 도와 지긋지긋한 가난을 견뎌내야 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단칸방 구석에서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어두운색 천을 두르고 책을 보던 소녀의 꿈은 하나.

 

'훌륭한 사람'이 돼 가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여고생이 된 소녀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연탄을 지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힘들 때면 이른 새벽 인천 답동성당에 가서 '다른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억척스럽게 일하며 공부한 소녀는 1971년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16년 뒤 모교의 교수가 됐고 다시 28년 뒤 그 대학의 총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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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인하대 최초의 여성 총장이자 두번째 모교 출신 총장으로 취임한 최순자(64·화학공학과 71학번) 총장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1년전 약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는 4년 재임 기간 매달 급여에서 400만원씩을 떼어 총 2억원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매달 월급의 40%가량을 후학들을 위해 내놓는 최 총장은 "어렵게 공부했지만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라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말했다.

 

최 총장은 28년간 인하대 교수로 재직하며 장학금 등으로 1억2천여만원을 내놨고 2014년에는 시가 2억원 상당의 강화도 땅을 선뜻 기증했다.

 

최 총장이 대학을 졸업한 뒤 지인들이 모아준 200달러를 들고 미국 남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났을 때의 경험도 그녀를 '나눔에 익숙한 이'로 만드는 바탕이 됐다.

 

최 총장은 그때 2년간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했고, 다시 2년 동안 주유소에서 주말과 야간에 주 30시간씩 일하며 공부했다.

 

유학시절 지도교수인 존 어클로니스 교수는 최 총장 취임식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자신의 시계를 한국시각에 맞춰 놓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낮에는 많은 이가 동시에 같은 실험장비를 쓰는 탓에 늦은 밤이나 새벽에 장비를 자유롭게 쓰면서 상당한 연구 실적을 쌓았다는 것이다.

 

최 총장은 평생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로 살아오며 정립한 나눔에 관한 자기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지식처럼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은 높은 곳을 바라보고 배우며 살아야 하고, 물질적인 것은 낮은 곳을 보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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