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은 두 배에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분위기예요. 한국 조종사들 인기도 많고요. 그래도 한국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있죠"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지 2년 된 대한항공 출신 기장 김모씨의 말이다.
김 기장은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중국 항공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조종사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다"며 "한국인 조종사는 비행기량·영어수준이 높고 문화가 비슷해 중국 항공사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중국 국적 50여개 항공사들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외국인 조종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재작년부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장은 중국으로, 부기장은 기장 승진이 빠른 국적 저비용항공사(LCC)로 연쇄이동이 이어지고 있다.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앞으로 20년 동안 중국의 새 항공기 수요가 6천330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며 조종사 수요 역시 폭발적이다.
김 기장은 연봉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의 근무여건과 정서적 여건 때문에 중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 조종사 평균 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급여와 항공기 조종을 자동차 운전보다 못하게 여기는 회사 분위기를 참기 어려웠다"며 "조종사의 신체리듬을 고려하지 않는 스케줄로 근무 중 깜빡 조는 경험까지 하고는 이직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에서는 소형 여객기 기장 연봉이 세후 1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중국에서는 2억5천만원∼3억원 가까이 받는다. 대형기종 기장은 3억원∼4억원도 받는다.
연봉은 근무 일수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인 조종사들은 주로 20일 일하고 10일 쉬는 조건을 선택해 한국을 자주 오간다.
김 기장은 중국에서 월세로 살면서 아이들은 집 근처 일반 초등학교에 보낸다.
중국 부동산은 전세가 없다.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빼고는 서울보다는 월세가 싸고 교육비도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면 연간 4천만원 정도 들지만 일반학교에 보내면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한국인 조종사들은 자녀가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국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김 기장은 전했다.
김 기장은 "내가 속한 중국 항공사만 해도 한국인 조종사가 두자릿수로 급격히 늘었다"며 "현재 중국 항공사로 이직을 협의 중인 한국인 조종사들이 워낙 많아 앞으로 수년간은 중국 내 한국인 조종사 수가 가파르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조종사들은 "언제 중국가?"라는 말을 안부 겸 인사말처럼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기장은 중국 항공사의 장점을 묻자 "높은 급여와 조종사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라며 "중국 항공사들은 경제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안전한 방향으로 기장이 결정을 내리면 누구도 따져 묻거나 징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조종사의 근무시간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회사에서 알아서 조절해주고 항공기 안전이나 근무여건과 관련해 사측에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단점을 묻는 말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고향을 떠나온 데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움이 있다"며 "조종을 할 때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현지인들과 영어로 소통이 어려워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장은 지금은 중국이 조종사를 외국에서 스카우트하지만 한 해에 수 천명씩 양성하고 있어 중국인 조종사를 거꾸로 세계시장에 진출시킬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본다.
한국에서는 민항기 부기장이 되려면 군에서 훈련받지 않는 한 대학교·비행훈련원·유학 등을 통해 최소 7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비를 들여야 하지만 중국은 각 항공사가 처음부터 비용을 부담한다.
김 기장에 따르면 중국 항공사들은 조종사로 키울 인력을 선발해 비행학교에 맡겨 교육하고, 비행학교를 졸업한 조종사는 부기장이 되기 전 '보조 부기장'으로 1∼2년간 조종석 뒷좌석에서 간접경험을 쌓고 나서 조종간을 잡게 된다.
만약 중국인 기장이 다른 항공사로 이직하면 새로운 항공사에서 이적료로 그간의 교육비를 기존 항공사에 내는 체계다.
김 기장은 "한국에서 부기장이 되려면 금수저이거나 은행에서 엄청난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가면 머지않아 한국 항공사들이 조종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중국인 조종사를 데려오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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