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멸종의 공포가 피부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 이전에 이미 많은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기관과 단체들이 생물종 보호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많은 종들이 그 보호에서조차 배제되어 있다.
'하트시그널'을 통해 '멸종동물 조형작가'로 알려진 정의동은 주로 금개구리, 남생이, 상괭이 같은 멸종위기의 한반도 토종 생물들 모형을 제작한다. 그들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름을 알면 관심이 생기고,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이면 보호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존재는 말이 없다'는 작가가 8년간 멸종위기 동물들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한 작업일지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년이 사업에 실패하고 조형작가가 된 순간부터 전시와 판매를 통해 어엿한 작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 코로나19로 일이 끊겨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버텨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외된 존재들을 비추는 예술인이 되기까지. 멸종위기 동물을 만들다가 멸종할 뻔했던 한 청년의 드라마틱한 생존일지이기도 하다.
그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인의 삶과 고뇌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사연을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 공존의 가치,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한 예술가의 일기를 넘어 소멸의 두려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동물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한반도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고래의 천국이었고 또 표범과 호랑이의 땅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에 의해 한 종이 멸종되어버린 스티븐스 굴뚝새, 제대로 된 표본 하나 남지 않아 상상 속에서만 그 모습이 존재하는 도도새, 밀렵꾼의 총탄에 죽은 한반도의 마지막 황새부부 등 우리의 관심 밖에 있던 동물들의 사연은 사라짐이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의 탐욕 때문임을 고발한다.
기후변화를 말하면서 멸종을 걱정하지만, 그전에 생물들을 멸종으로 내모는 것은 인간이다. 대부분의 멸종은 생물들의 서식지 파괴가 그 원인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인간의 필요를 채우면서도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안타깝다.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며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라는, 이 단순한 이치를 무시한 결과 가장 약한 존재들부터 사라지는 것이다.
이 책은 성장해가는 젊은 예술인의 고뇌도 생생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