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성폭행하려는 남자 혀 깨물었다가 오히려 상해죄로 징역형 선고 받은 여성, 60년 만에 '재심'

최말자 씨, 60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 혀 깨물어 징역형 선고받아


인사이트2023년 5월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 씨가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18살일 당시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78세 최말자 씨가 60년 만에 재심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등 최씨가 주장한 재심 청구 사유가 신빙성이 있다며 법원이 이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앞서 최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6일 일면식 없던 남성 노 모 씨(당시 21세)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했다.


최씨는 강하게 저항하다 노씨의 혀를 깨물어 1.5cm 절단했고, 이 덕분에 성폭행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음에도 수사 과정과 재판을 거치면서 도리어 가해자가 됐다.


당시 검찰은 최씨가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첫날 영장 없이 구속해 6개월간 불법 구금했다.


검찰은 최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기소 했고, 1심은 "혀를 끊어버림으로써 일생 말 못 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당한 방위의 정도를 지나쳤다"며 1965년 1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반면에 최씨를 성폭행하려 한 가해 남성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를 받지 않았다.


노씨는 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만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성폭력 피해자인 최씨보다 더 낮은 형량을 받은 것.


후에 이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 등에 다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평생 억울함을 품고 살던 최씨는 성폭행 피해 56년 만인 2020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최씨 측은 혀를 깨문 것은 정당방위로 봐야 하고, 검찰 수사도 불법적이었다며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씨는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와의 결혼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3년 넘는 심리 끝에 원심 결정 뒤집어


인사이트뉴스1


그러나 부산지법은 2021년 2월 "무죄로 볼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최씨는 변호인단과 함께 노 씨의 혀가 잘렸는데도 정상적으로 병영 생활을 했다는 증거 자료를 토대로 부산고법에 항고했지만, 또다시 기각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3년이 넘는 심리 끝에 대법원은 원심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관한 최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해당 진술과 모순되거나 진술 내용을 탄핵할 수 있는 다른 객관적 근거는 없다"며 "재항고인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 초순경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년 9월 1일까지의 기간 동안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최씨 진술을 깨뜨릴만한 반대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 사실조사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