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심필보(65)씨가 기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
중학생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 갔던 한 중년남성이 매달 월급을 쪼개 모아 20년간 2억 5천만 원 상당을 기부했다.
학창 시절 가장 큰 추억이 되는 '수학여행'을 자신과 같은 이유로 못 가는 학생들이 없길 바라는 이유에서다.
20일 조선일보는 정년퇴직 후 울산 중구의 비영리 봉사 단체 '참나눔회'를 꾸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심필보(65)씨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심씨는 울산 지역 130인의 회원 중 가입 당시 유일한 직장인 신분이었다.
심씨의 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매달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마련한 300만 원을 들고 모교인 농소중학교를 찾은 심씨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금을 전달했다. 지난 2021년 정년퇴직한 심씨가 모교에 전달한 장학금은 6300만 원에 달한다.
그의 기부는 모교에만 그치지 않았다. 심씨는 모교에 장학금을 처음으로 전달한 이후 매달 20만 원씩 사랑의 열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한적십자사, 굿네이버스, 한국여성의전화 등 각종 사회복지기관에 후원금을 보내왔다.
심씨는 "중학생 때 수학여행 못 간 게 한이 돼 나 자신과 약속했다. 어른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꼭 하겠다고"라며 꾸준한 기부 활동은 어린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971년 중학생이었던 심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수학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수학여행 당일, '장날이니 장터까지 장바구니를 들어달라'는 모친의 부탁에 집을 나선 심씨는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는 친구들과 마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씨는 "부끄러운 마음과 부러운 마음, 서러운 마음이 밀려와 길모퉁이에 숨어 한참을 울었다"며 "집에 돌아오는 길 '어른이 되면 아이들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다른 아이들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심씨의 말이다.
심씨는 "모교에 기부한 장학금으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어른이 되면 선배님처럼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좋은 물건 사면 오는 행복은 며칠 뿐, 남 돕는데 사용하면 훨씬 오래간다"
지난 2016년 사랑의열매에 1억 원을 기부하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심씨는 이후로도 5천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고 이듬해인 2017년에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5천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빚을 내 기부하고 월급을 모아 이를 갚아나간 것이다.
정년퇴직 후 '참나눔회'라는 봉사단체를 꾸린 심씨는 매주 두 차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심씨는 "단번에 내라고 했으면 이만큼 기부하지 못했을 거다. 기부는 형편에 맞게 차근차근 하는 것"이라며 "좋은 옷이나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면 일시적으로는 행복하지만, 며칠뿐이다.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 행복이 훨씬 오래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