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수)

대학시절 전두환에 '무기징역' 선고했던 윤 대통령... "계엄군 보고 피신" 후보자 시절 발언 재조명

윤 대통령, 대학시절 모의재판서 전두환에 '무기징역' 선고


인사이트SBS '집사부일체'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 이후 온라인에서는 윤 대통령이 서울대 법학과 재학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일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 27분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오후 11시에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가 발표되면서 전국이 계엄 상태에 들어갔다.


이에 국회는 4일 오전 1시 본회의를 소집해 재석 190명, 찬성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처리해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7분께 담화를 통해 계엄을 해제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1980년 전두환의 비상계엄 확대 조처 이후 44년 만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이 텅 비어있다. 2024.12.3/뉴스1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이 텅 비어있다. /뉴스1


앞서 윤 대통령은 2021년 9월 후보자 시절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과거 대학생 시절 12·12 군사반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윤 대통령은 1980년 5월 초 모의재판에서 재판장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그는 "나는 그때 재판장으로, (반란) 수괴로 기소된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실권자였던 전두환을 궐석으로 (처리)해 가지고 무기징역 선고를 했다"라고 말했다.


인사이트SBS '집사부일체'


이어 윤 대통령은 계엄군을 피해 다닌 일화도 전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3개 공수여단을 광주로 투입했다. 이로 인해 민간인 166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쳤다.


계엄령은 1981년 1월 24일까지 440일간 이어졌다.


"계엄 당시 강릉으로 피신해"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 대통령 기록관 홈페이지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 대통령 기록관 홈페이지


윤 대통령은 해당 방송에서 "(그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며 "학교에 가보니 장갑차와 총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가가 있던) 강릉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해서 가 있었다. 내가 집을 떠나고 난 후 우리 집에도 (계엄군이) 왔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된다면 절대 하지 않을 두 가지에 대해 "밥을 절대 혼자 먹지 않겠다"며 "밥은 소통의 기본이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과 밥을 먹으며 소통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며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앞으로 나와서 잘했든 잘못했든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인사이트SBS '집사부일체'


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7월 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직후 관련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학생 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때리셨던 마음을 지금도 갖고 계시냐"라고 질문하자 "그렇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19일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윤 대통령은 SNS를 통해 "발언의 진의는 결코 전두환에 대한 '찬양'이나 '옹호'가 아니었다"며 "대학 시절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윤석열이다. 제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탄압한 전두환 군사독재를 찬양·옹호할 리 없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