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6일, 일을 마치고 퇴근한 중국 국적의 조선족 여성 김 모 씨(당시 48세)가 연락 두절됐다. 약 일주일 뒤, 김 씨는 경기 수원시 팔달산에서 장기가 사라진 토막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민 제보로 검거한 범인은 조선족 박춘풍(당시 57세)으로, 김 씨의 동거남이었다. 이 사건은 '장기 없는 토막살인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가운데 김 씨의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 등은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다.
팔달산서 장기 없는 토막 시신 발견…범인 제보에 '현상금 5000만 원'
2014년 12월 4일 오후 1시쯤, 경기 수원시 팔달산을 등산하던 40대 남성이 입구가 열려있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봉지 밖으로 팔, 다리 없는 몸통 시신 일부가 삐져나와 있었고, 이를 본 남성은 깜짝 놀라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몸통 시신은 신장 한 개를 제외하고 장기 일체가 사라진 처참한 상태였다. 미리 시신의 피를 빼는 작업을 한 듯 봉지 안에 혈흔은 없었고, 목장갑이 함께 들어 있었다.
팔달산은 번화가인 수원역에서 고작 2㎞가량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많이 다녀 발견 즉시 바로 범행이 들통날 수 있음에도 시신을 암매장하지 않고 이렇게 유기한 것은 많은 이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불과 2년 전 1.4㎞ 떨어진 곳에서 인육 논란이 불거졌던 '오원춘 사건'이 발생해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장기 매매, 인신매매 괴담이 떠돌았다.
워낙 발견된 부위가 적어서 시신은 여성으로 추정됐고, 혈액형이 A형인 것만 확인됐다.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고, 목장갑에서는 피해자의 DNA만 나와 수사가 지지부진했다.
경찰은 수색 인력을 늘리고 범위를 확대해 나머지 시신 조각 찾기에 나섰다. 팔달산 인근에 설치된 CCTV도 확인했지만, 시신을 감싼 검은 봉지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범인 제보에 현상금 5000만 원, 검거 경찰관에겐 1계급 특진을 내걸기도 했다.
12월 8일 오후 11시 30분쯤, 김 씨 성을 가진 한 여성이 파출소를 찾아와 "동생이 지난달 26일 퇴근하고 그다음부터 연락이 안 된다. 가족하고 연락을 끊을 애도 아니다. 그다음 날부터 출근하지도 않았다"며 가출 신고를 했다. 동시에 "동생이 박춘풍과 4월부터 동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찰은 사건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 여성의 DNA를 채취, 국과수에 의뢰했다. 국과수로부터 여성의 DNA가 팔달산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의 DNA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실종된 동생이 살해된 김 씨로 드러났다.
"월세방 가계약 뒤 연락 끊긴 조선족"…화장실서 1㎜ 지방 덩어리 검출
그러던 중 12월 11일 오전 10시 20분쯤, 팔달구의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주인이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이 집주인은 "11월 말에 월세방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 날짜가 지났는데도 안 나타난다. 55세 중국 교포였는데, 가계약 해놓고 보름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곳은 토막시신이 최초로 발견된 팔달산 등산로와 직선거리로 약 1.1㎞ 떨어져 있었다.
이날 오후 3시 35분쯤 집주인은 재차 경찰에 연락해 "방에 다시 들어가 봤더니 상자 안에 비닐봉지하고 장갑이 있다. 이상하다"고 신고했다.
곧장 출동한 경찰은 이 월세방 화장실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에서 좁쌀만 한 크기의 빨간색 점을 발견했다. 경찰은 아무리 봐도 핏자국 같다는 생각에 과학수사대에 연락했고, 화장실 전체 정밀 감식이 이어졌다.
그 결과 하수구에서 1㎜도 안 되는 지방 덩어리가 발견됐는데, 이는 피해자 김 씨의 DNA와 일치했고 두루마리 휴지에 찍힌 빨간 점도 김 씨의 혈흔으로 밝혀졌다.
또 이날 경찰은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수원천 매세교와 세천교 사이 둑방 옆 잡초 덤불 사이에서 검은색 비닐봉지 총 6개를 발견했다.
이 비닐봉지들은 100여m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었고 매듭 없이 개봉된 상태였다. 다섯 봉지에는 살점과 장기가 들어있었고, 나머지 하나에는 여성용 팬티가 담겨 있었다.
국과수 분석 결과 이 역시 피해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봉지가 발견된 곳은 몸통이 발견된 곳에서 약 1.2㎞ 떨어진 곳이었고, 월세방까지 거리는 고작 400m밖에 안 됐다.
"벽에 부딪혀 죽었다" 우발 살인 주장…부검 결과 '질식사'
그렇게 경찰은 박춘풍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추적했다.
먼저 박춘풍의 인적 사항을 파악한 경찰은 탐문수사 끝에 그가 팔달구에 있는 한 치과에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경찰은 치과 CCTV를 통해 그가 영어 이니셜이 새겨진 야구 모자를 쓰고 방문하는 인적 사항을 파악했다.
이어 휴대전화 추적으로 박춘풍의 위치를 알아낸 경찰은 잠복 끝에 이날 밤 11시 30분쯤 수원역의 한 모텔에 성매매 여성과 방문한 박춘풍을 덮쳐 긴급 체포했다.
박춘풍은 묵비권을 행사하다 압송된 지 3시간 만에 범행을 시인하면서도 "말다툼이 벌이다 밀쳤는데 벽에 부딪히면서 죽었다"며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다.
박춘풍은 수원 외에 화성시 등 총 4곳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팔달산과 수원천변 등 수원시 팔달구 2곳, 수원과 화상 경계 지점 2곳 등에서 비닐봉지 총 11개가 발견됐다. 모두 김 씨의 DNA와 일치했다.
박춘풍의 '우발적 사고' 주장과 달리 김 씨의 머리 부분을 부검한 결과, 김 씨는 목이 졸려 질식사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춘풍은 여자관계와 생활비 지원 등 문제로 김 씨와 잦은 다툼을 벌였고, 김 씨를 살해한 날 일을 쉬고 범행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박춘풍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김 씨를 찾아가 반강제로 원래 주거지로 끌고 가 목 졸라 살해한 뒤 한 차례 시신을 훼손했다. 이어 범행 전 선금 20만 원을 주고 가계약한 반지하 월세방으로 시신을 옮겨 다시 훼손하고 유기한 다음 종적을 감췄다. 이 월세방은 원래 주거지에서 약 200m 떨어져 있었다.
사법사상 초유 범죄자 뇌 감정…상고 끝 '무기징역'
2014년 12월 13일 박춘풍의 신상이 공개됐고, 다음 날 살인 및 사체 손괴, 시체 유기 혐의로 구속됐다.
2015년 6월 30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양철한)는 박춘풍의 살인 행위를 계획적 범행으로 보고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을 명령했다.
동시에 1심 재판부는 "충돌조절을 하지 못하고, 통제력을 잃거나 내면의 적대감과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진단 기준에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며 박춘풍에게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렸다.
그러자 박춘풍의 국선변호인은 1심에 불복, 항소하면서 "박춘풍은 어릴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다쳐 의안을 하고 있다. 이것이 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상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사법사상 처음으로 범죄자의 뇌 영상 촬영과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박춘풍은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지 않았으나, 뇌 일부가 손상됐고 기능도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피하지는 못했다. 다만 재범 위험성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전자발찌 명령은 파기했다.
박춘풍이 무기징역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상고하였으나, 2016년 4월 15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뉴스1) 소봄이 기자 ·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