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폭염이 길게 이어지며 한국의 사계절 길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계절 분류 기준이 세워진 1979년 대비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계절을 재정의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22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국립기상과학원은 지난 30일 '온난화에 따른 계절 길이 변화 및 부문별 영향' 포럼 개최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온실가스 저감 노력 없이 현 추세가 지속한다면 2071~2100년 서울은 지금보다 여름이 40일 더 길어지고 겨울이 40일 더 짧아진다.
같은 시기 부산은 여름과 봄가을이 번갈아 오는, 겨울이 아예 사라진 날씨가 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2020~40년대엔 대도시 일부 지역과 해안 지역, 2080~2100년대엔 강원도 일부 및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 지역 외 대부분 지역엔 아열대 기후가 나타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사계절 간 길이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던 옛날과 달리, 계절별 길이 차이가 날이 갈수록 심화하며 사계절 재설정은 불가피한 일이 됐다. 특히 산불, 홍수 등 기후 영향을 받는 재난이나 농업 등 생장과 관련된 대책은 이같은 계절 구분에 따라 수립되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가장 최근 대책인 '제3차 국가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유효기간이 2025년인 것도 한몫한다. 한국은 국가 기후 변화에 따른 적응 대책을 2011년부터 5개년 단위로 내놓고 있다. 제4차 대책은 오는 11월까지 기후 변화로 인한 리스크 목록 등을 보완해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한국은 기상학적 여름의 기준을 일 평균기온 9일간, 이동 평균한 값이 20도 이상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지 않는 때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여름은 최대 5월 초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겨울은 절반가량으로 줄어든다.
날씨 길이가 재조정되면 농업, 어업 등 동식물 생장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분야 정책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통적 홍수기와 갈수기의 기준이 변화돼 각종 용수 확보 및 취수원 다각화, 수질 관리 등에 대한 세부 기준도 조율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래종 및 교란종 영향이 커지면서 감염병에 대한 대책 수립도 필요하다. 홍제우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에서 "계절 길이 변화를 고려해 물관리 등 현재 평가지표의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균 기온이 높은 남부지방일수록 기후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지역 산업 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빙어, 눈꽃 등 기후와 특산물 등을 이용한 지역 축제나 스키장, 워터 파크 등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지자체의 경우 지역 재정 운영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노동 및 산업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가 이날 소개한 2021년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등재된 "더위와 폭염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 연구에 따르면 농업, 건설업에 종사하는 육체노동자의 생산성은 약 20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기온이 상승할 때마다 점차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문제 외에도 조사 대상자가 된 야외 근로자의 약 3분의 1은 고열, 심혈관 질환, 급성 신장 질환 등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온다습한 여름이 길어질수록 수인성, 식품 매개 등 감염병이 유행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점도 정책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이는 기업의 미래 먹거리 발굴 및 주요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글로벌 기후정보 공개 플랫폼인 CDP에 따르면 국내 38개 기업이 기온 변화 및 폭염일수 증가에 따른 야외 근로일수 감소, 냉방 등 에너지 비용 증가, 강수 패턴 변화에 따른 물 부족 심화 등이 향후 사업에 리스크를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다만 기상청 관계자는 "기후 변화에 따라 각 계절의 길이가 달라지는 기미가 감지돼 학계 전문가들과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계절 재조정의 구체적 계획이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뉴스1) 김예원 기자 ·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