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나온 짧고도 강렬한 한 장면이 있다.
형사 조용구는 백광호가 휘두른 나무로 다리를 맞았는데, 이때 하필 녹슨 못에 찔리고 만다.
이후 환부를 방치한 조용구는 점차 오른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조용구는 다름 아닌 '파상풍'에 걸렸다. 근육 조직이 썩어들어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다리를 잘라내야 했고, 우리에게 이 장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뿐만 아니라 숱한 드라마, 영화에서 파상풍에 걸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의 모습이 많이 그려졌다.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파상풍에 걸렸다는 사람을 찾기 힘든데도, 마치 괴담처럼 파상풍에 대한 공포심은 번져갔다.
과연 우리는 파상풍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1. 녹슨 못
녹슨 못에 찔리면 신체를 절단하거나 돌연 사망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찔린 부위부터 천천히 썩어들어가면서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는 무시무시한 질병. 바로 '파상풍'이다.
어린 시절 예방 접종을 받지만 언제나 녹슨 못을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말씀 때문인지 조금만 상처가 나도 공포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흔히 발병하지는 않지만 한 번 걸리면 돌이킬 수 없어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2. 십중팔구(十中八九)
의학기술과 백신의 발달로 파상풍의 치사율은 극히 낮아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과거 파상풍은 치사율이 70%를 넘을 정도로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었지만, 최근에는 25%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파상풍에 걸린 10명 중 2~3명이 사망했다는 말이다. '사망'한 사람의 숫자만 그렇다.
지난 2015년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만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도 유사한 치사율이라고 하니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는 성인을 기준으로 한 치사율이며 면역력이 약한 유아, 65세 이상 노인에 발병하면 십중팔구 사망할 정도로 위험성이 크다.
유아의 경우 뛰어놀다 실수로 녹슨 못이나 철제 기구에 찔리는 상황, 노인의 경우 논밭에서 일하다가 오래된 농기구에 상처를 입는 상황 등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3. 범인은 가까이 있다
"파상풍은 녹슨 물건에 찔려서 걸리는 병"이라는 상식은 완벽히 맞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다.
파상풍은 '클로스트리듐 테타니(Clostridium tetani)'라는 파상풍균이 원인인데, 이것이 피부 상처를 통해 인체로 침투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주로 동물의 대변이나 오염된 흙에 존재한다. 물론 녹슨 물건에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동물의 대변, 오염된 흙이 아닌 녹슨 물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녹슨 못은 파상풍을 발병하기에 최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녹슨 못에 찔리면 그곳에 있던 파상풍균이 외상을 통해 피부 속 깊이 침투한다.
그렇게 침투한 파상풍균은 제대로 소독하기도 어렵고, 산소가 잘 통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
이때부터 끔찍한 악몽은 시작된다.
4. 후궁반장(Opisthotonos)
파상풍균이 인체에 침투하면 1주에서 2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독소를 생성한다.
독소는 혈액을 따라 온몸으로 퍼지고, 신경계까지 영향을 미치며 신경 전달을 방해한다.
이때부터 경련과 근육 수축, 경직이 일어난다. 온몸의 근육이 점차 딱딱하게 굳고 줄어들며, 안면 근육에 이상이 생겨 개구장애(Trismus)를 유발한다.
그렇게 환자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린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파상풍균은 운동 신경을 마비시키면서도 감각 신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뜻.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근육이 점차 쪼그라들고 인체는 동그랗게 말리면서 활처럼 휘게 되는데, 이를 '후궁반장'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쇼크로 사망하거나 쪼그라든 근육이 호흡기와 흉부를 압박해 질식하게 된다.
5. 어두운 방
모든 질병도 마찬가지겠지만 파상풍은 특히나 예방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10년에 한 번씩 파상풍 예방 접종을 할 것을 권하며 동물의 대변, 오염된 흙, 녹슨 철제 기구 등 파상풍균이 증식하는 물건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파상풍에 걸리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파상풍으로 의심되거나 파상풍 초기인 환자에게는 곧장 파상풍 면역제를 투여한다.
이후 광발성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어 환자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파상풍균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의료진은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을 수도 있어 항시 관찰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즉시 응급조치를 시도해야 한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개월 동안 어둠 속에서 파상풍균과 싸워 이기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파상풍은 완치해도 절대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