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6일(일)

'변호사' 행세 파워블로거…전 부인 재결합 거부하자 살해

인사이트전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유명 블로거 황덕하 씨의 공개수배 전단. / 수원남부경찰서  


13년 전 오늘 누리꾼 사이에서 '잘나가는 서초동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파워블로거 황덕하 씨(당시 51세)가 전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했다.


황 씨는 모 포털 사이트에서 독일 철학자 슈뢰딩거의 이름을 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다양한 정치·사회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글과 뉴스 등을 게시했다.


그의 포스팅은 약 1만 8000개에 달했으며 블로그는 누적 170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는 등 황 씨는 온라인상에서 꽤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 살인마가 된 파워블로거


황 씨는 2011년 7월 7일 저녁 7시 30분쯤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자기 부모 집에서 2년 전 이혼한 부인 A 씨와 만났다.


황 씨는 A 씨에게 재결합을 요구했지만 A 씨가 이를 거절하자 격분해 미리 준비해 간 30㎝ 길이의 회칼로 자기 부모가 보는 앞에서 A 씨를 찔렀다. 6차례나 찔린 A 씨는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황 씨는 부인을 찌른 후 "나도 죽겠다"며 그대로 차를 타고 달아났다. 이후 약 7㎞ 떨어진 산자락에 차를 버리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경찰은 황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거나 혹은 고시원 일대에 은둔해 있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황 씨가 차를 버린 경기 칠보산 일대와 그가 공부하던 서울 신림동 일대의 고시원을 수색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황 씨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경찰은 그해 9월 6일 공개수배를 결정하고 전국에 2만 장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인사이트범행 장소에서 약 7㎞ 떨어진 산자락에 몰고 온 승용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황 씨. / SBS 


◇ 인적 드문 산길에서 약초 캐려던 노인이 시신 발견


이후 일주일이 흐른 9월 13일 약초를 캐기 위해 칠보산을 오르던 한 노인이 C 기도원 뒤편에서 목을 매 숨져있는 황 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된 시신은 황 씨가 전 부인을 살해하던 날 입고 있던 검은색 등산복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 또 시신의 주머니에서는 황 씨가 범행 당일 출금한 것으로 보이는 현금 70만 원과 황 씨 명의의 통장, 휴대전화 가입신청서 등이 나왔다.


시신은 발견 당시 거의 백골 상태였으므로 경찰은 황 씨가 사건 당일 집에서 나온 뒤 곧바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이 칠보산 일대를 수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황 씨의 시신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건 C 기도원이 등산로와 150m가량 떨어져 있어 다소 인적이 드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인사이트황 씨가 운영했던 블로그 '슈뢰딩거의 고양이' / 온라인 커뮤니티


◇ 현실서 살인했어도 인터넷 속 또 다른 자아는 아무렇지 않게 활동


황 씨는 범행 당일 오전에도 포스팅했을 정도로 블로그에 심취해 있었다. 그가 남긴 포스트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를 덮친 모래 폭풍 영상이 담겼다. 또 팔로워가 1만 1400명이 넘는 트위터(현 X)도 운영 중이었던 황 씨는 범행 다음 날인 2011년 7월 8일 트위터에 마지막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이렇게 SNS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문대를 졸업하고 부동산 사업을 하던 황 씨는 사건 발생 10년 전부터 법무사 시험을 보겠다며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다 결국 부인과 이혼했다.


사망한 부인 A 씨는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며 결혼생활 내내 일정한 직업이 없던 황 씨를 부양해 왔다. 또 A 씨는 이혼 당시 황 씨에게 위자료로 2700만 원을 건넨 것에 더해 생활비로 한 달에 100만 원씩을 보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황 씨는 이혼 당시 약속했다는 위자료 5000만 원을 채워 달라고 요구하며 A 씨를 지속적으로 찾아갔다. 이에 A 씨는 나머지 위자료를 주는 조건으로 황 씨에게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해 황 씨 부모의 집을 찾았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10년간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며 쌓은 지식으로 블로그에서는 누리꾼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하고 각종 집회에도 참여하는 등 인권변호사인 것처럼 행동했던 그는 정작 직업도 수입도 없이 고시원을 전전하는 등 변변치 못한 삶을 살아온 중년이었다.


황 씨 블로그의 상당수 글은 황 씨가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와 자신이 쓴 것처럼 꾸민 글이었다. 황 씨의 범행으로 온라인상 지위와 현실의 괴리가 컸던 그의 실제 모습이 까발려지자, 누리꾼들은 그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몰려가 이중성과 잔인함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뉴스1) 김송이 기자 ·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