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부를 함께 보낸 70대 노부부
아장아장 걷던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70대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함께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부부인 얀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은 지난달 3일 의사로부터 안락사 약물을 투여받고 함께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각별한 친구로 지냈다. 이후 20대에 결혼해 아들 한 명을 낳았다.
얀은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스포츠 코치로 일했다.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두 사람은 물과 보트, 요트 등을 좋아해 결혼 생활 대부분을 모터홈이나 보트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절에는 하우스 보트에 살면서 화물선을 사들여 네덜란드 내륙 수로를 따라 상품을 운송하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잉꼬부부로 알려진 이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위험 신호가 켜진 것.
얀은 오래 지속된 과중한 업무로 인해 허리 통증을 호소했고 2003년 허리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먹는 것을 원치 않아 결국 복용을 중단,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2018년 교직에서 은퇴한 엘스는 치매 조기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로 인해 사망한 아버지의 쇠약과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에 쉽게 의사를 찾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아들과 함께 동반 안락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얀은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병(치매)을 생각했을 때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들은 부모의 동반 안락사를 극구 반대했다. 그는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거다"라며 이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얀과 엘스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아들의 동의를 받아냈다고 한다.
안락사 전날 이들 부부는 가족과 함께 해변에서 산책하며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부부의 가족과 친구들이 지역 호스피스에 모여 2시간 동안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아들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며 "우리 모두가 함께 마지막 저녁을 먹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후 얀과 엘스는 의사에게 약물을 투여받았고 몇 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하고 의사가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했을 때 안락사가 가능하다.
최소 2명의 의사가 절차에 동의해야 한다. 2023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9068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