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결코 허무맹랑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경기 결과는 3대3 무승부였지만 사실상 김판곤 감독의 완승이었다.
축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축구의 신'이란 찬사까지 나온다.
지난 25일(한국 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경기에서 한국은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와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가 끝난 후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우리로선 환상적인 결과를 얻었다. 선수단은 물론 정부와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며 "영광스러운 경기였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한국은 직전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고, FIFA 랭킹 23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뒤는 선수들까지 포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전하긴 했지만 후반전에는 우리가 스코어를 뒤집었다. 엄청난 결과였다. 그래도 한국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최고 수준의 팀을 잘 경험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약점을 찾았다는 게 우리가 공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수준은 정말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결승까지 갈 수 있고, 우승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지난 2022년 1월 말레이시아의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22년 말 동남아 축구연맹 선수권 대회 4강 진출을 이뤘다. 이어 아시안컵 예선에서 바레인, 투르크메니스탄, 방글라데시와 붙었는데, 2승 1패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말레이시아는 2007년 이후 처음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말레이시아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이 아닌 자력 진출은 1980년 이후 43년 만에 처음이다.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전력상 우위에 있던 키르기스스탄을 이기고, 대만 원정에서도 승리하면서 D조 1위로 올라섰다.
국내 팬들에게도 김판곤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지난 2017년 대한축구협회(KFA)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에 취임해 행정가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을 주도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벤투 감독 선임 당시 브리핑과 질의응답이었다. 설득력 있는 선임 배경과 질의에 정면돌파하는 답변으로 벤투 감독의 중국 슈퍼리그 실패만 주목하던 이들의 시선과 생각을 크게 확장 시켰다.
이후에도 여자 A대표팀에 콜린 벨 감독을 선임하는 등 냉정한 판단과 분석력으로 한국 축구의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의 선전으로 '판곤 매직'이란 별명까지 얻은 김 감독은 이번 한국과의 경기를 통해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일본 매체 닛칸스포츠는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감독이 모국을 상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일본 누리꾼들도 "클린스만 대신 김판곤 감독으로 바꿔야 한다"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아시안컵을 마무리한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은 다시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 집중한다. 아직 4경기가 남아있지만 앞선 2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말레이시아의 3차 예선 진출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총 48개국이 참가하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 직행 티켓은 8장, 김 감독이 이끄는 말레이시아가 3차 예선에서 최종 8위 안에 들어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