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이 월드클래스에 걸맞는 실력은 물론 주장의 품격까지 보여줬다. 이제 사실상 그에게 마지막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손흥민이란 이름에 무게감이 날로 더해져 왔다. 스스로가 쌓아 올린 엄청난 기록들이 양어깨에 가득하지만, 그는 시즌을 더해 갈수록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순간에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유럽에서 10년 넘게 활약하면서 그의 성장의 밑거름이 된 굵직한 변곡점들이 있다.
그의 성장에 바탕이 된 7경기를 꼽아봤다.
1. 2010~2011시즌 분데스리가 10라운드 원정 쾰른전..."전설의 시작"
18살. 전설의 시작이었다. 2010년 10월 30일 분데스리가 10라운드 쾰른전, 이 경기는 손흥민에게도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남았다.
프리시즌 중 첼시 FC를 상대로 골을 넣고 단번에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 손흥민은 이 경기에서 새끼발가락 골절을 당한 뒤 2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많은 팬들이 혹여 폼이 떨어졌을까 우려하던 때, 손흥민은 FC 쾰른전에 선발로 나와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볍게 뚫고 골키퍼를 재치 있게 벗겨내면서 멋지게 프로 데뷔골을 장식했다.
날아온 롱패스를 오른발로 툭 차서 골키퍼를 넘긴 뒤 왼발로 가볍게 차서 마무리한 이 골로 손흥민은 함부르크 SV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웠다. 또한 한국 선수 최연소 유럽 1부 리그 데뷔골이었다.
2. 2013-2014시즌 분데스리가 12라운드 함부르크전..."친정팀 상대로 해트트릭'
함부르크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손흥민은 두 시즌을 보낸 뒤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당시 이적료는 1000만 유로로 레버쿠젠 역대 최고의 이적료였다.
레버쿠젠은 과거 차범근이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곳이다. 당시 손흥민은 리그와 DFB-포칼을 통틀어 12골 7도움이란 준수한 기록을 남겼는데 역시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친정팀인 함부르크전이다.
손흥민은 이 경기에서 전반 9분, 전반 17분, 후반 10분 세 골을 터뜨렸고, 후반 27분에는 어시시트도 기록했다. FIFA 홈페이지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37경기 연속 무패 소식과 함께 손흥민의 해트트릭 소식을 전했다.
키커와 빌트, 유로 스포르트 등 독일 유력 언론사들이 선정한 12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을 싹쓸이했고, 후스코어드닷컴도 분데스리가 12라운드 베스트 11을 발표하며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손흥민을 포함했다.
3. 2015-2016시즌 EPL 6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EPL 1호 골"
2015년 8월 28일 손흥민은 3000만 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그러나 적응은 쉽지 않았다.
데뷔전에서 가장 낮은 최하 평점을 받고 북런던의 토트넘 팬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았다.
이 모든 비난을 한 번에 무너뜨린 곳이 바로 9월 20일 터졌다. 후반 22분 크리스티안 에릭센에게 패스받은 손흥민은 직접 15m 드리블로 수비수 3명을 달고 가다가 골대 왼쪽 구석으로 강한 왼발 슈팅을 날려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프리미어리그 첫 골이었다. 손흥민은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그 골이 없었다면 제대로 팀에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4.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카잔의 기적"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은 스웨덴과 멕시코에 2연패를 당하며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상대는 세계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전후반 90분을 0-0으로 이어간 상태에서 김영권이 추가시간인 92분에 선제골을 터뜨린 데 이어 손흥민이 96분에 추가 골을 터뜨린 것.
이 경기는 '카잔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손흥민은 월드컵 직후 한국에서 열린 팬 미팅에서 "나에게 최고의 경기는 독일전"이라며 "어릴 때 독일에 가 인종차별을 많이 당해 힘든 상황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5. 2018-2019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맨시티전
토트넘에서 첫 시즌을 다소 부진하게 출발한 손흥민은 두 번째 시즌에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따냈다.
2018-2019시즌 챔피언스리그 예선전과 16강전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손흥민은 8강전 맨시티와의 1, 2차전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줬다.
1차전 손흥민은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찔러준 공을 엔드라인 넘어가기 직전에 골키퍼 등을 지고 살려내더니 골문 오른쪽으로 수비 2명 사이에서 벼락같은 터닝 슈팅을 날려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은 결승 골이 됐다.
2차전에서 손흥민은 전반 7분과 10분 연속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토트넘의 4강 진출을 이뤄냈다.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래 최초로 4강전에 올랐고, 결과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봤다.
6. 2019-2020시즌 EPL 16라운드 번리전..."푸스카스상"
손흥민의 가장 환상적인 골을 꼽자고 하면 2019-2020시즌 EPL 16라운드 번리전 골을 빼놓을 수가 없다. 손흥민은 혼자 70m를 질주했고, 상대 선수 6명을 따돌린 뒤 페널티 지역까지 뛰어 들어가 골 그물을 흔들었다.
손흥민의 인생 골 그 자체였다.
게리 리네커는 "손흥민은 여러분이 평생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단독 골 중 하나를 넣었다"고 했고, 주제 무리뉴 감독은 "내 기억으로는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호나우두가 그런 골을 넣었다"며 '손나우두 나자리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골은 결국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 2020'에서 한 해 동안 축구 경기에서 가장 환상적인 골을 기리는 푸스카스상'으로 선정됐다. 한국 선수가 푸스카스를 받은 것은 손흥민이 처음이었다.
7. 2020-2021시즌 EPL 2라운드 사우샘프턴전
시즌을 거듭할수록 나날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던 손흥민은 2020년 9월 20일 EPL 2라운드 사우샘프턴 원정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4골을 터뜨렸다.
유럽 5대 리그 역사상 아시아 출신 선수가 4골을 넣은 것은 최초였다. 토트넘에서 한 경기 4골을 가진 선수는 손흥민 이전 해리 케인과 위르겐 클린스만 2명에 불과했다.
이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오후 8시에 펼쳐져 경기를 보던 한국 축구 팬들을 열광케 했다. 또 EPL 데뷔골을 넣은 이후 정확히 5년 만에 4득점 경기를 만들어 내면서 9월 20일을 더욱 의미 있는 날로 만들었다.
토트넘 데뷔 시즌 때 4골을 넣었던 손흥민은 리그 2경기 만에 4골을 뽑아내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어진 2021-2022시즌, 그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5대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