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민서 기자 = 경기 의정부서 잡혀 특수강도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났던 김길수가 도주 63시간 만에 검거됐다.
특수 강도 혐의로 서울 구치소에 수용된 김길수는 당시 플라스틱 숟가락 손잡이를 삼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새벽에 도주했다.
김길수의 독특한 범행 과정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과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탈주범들의 탈출 수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수법으로 유치장과 교도소 등을 빠져나가 세상을 공포로 들썩이게 한 바 있다.
1. 신창원
강도치사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던 신창원은 탈옥 후 가장 오랫동안(2년 6개월) 붙잡히지 않은 범죄자다.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던 그는 1997년 1월 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통풍구 쇠철망을 끊은 뒤 탈옥했다.
그는 노역 도중 빼돌린 실톱날 조각으로 4개월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지름 1.5cm 쇠 철망을 조금씩 잘라냈다.
또한 철망 틈을 빠져나가기 위해 80㎏이던 몸무게를 60㎏까지 줄였고 이후 교도소 외벽의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교도소 내 교회 공사장으로 들어가 밧줄을 통해 공사장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탈옥에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그는 탈옥 후에도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는데, 도주하는 동안 경찰과 5차례나 만났지만 검거망을 벗어났다.
특히 1998년에는 경찰관과 격투를 벌인 뒤 권총까지 뺏어 달아나기도 했다.
2. 지강헌
지강헌은 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징역 7년, 보호감호(복역 후 교화를 위해 수용하는 것) 10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88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도중 공범 12명과 탈주했다.
이들 중 붙잡히지 않은 4명은 서울 북가좌동의 한 자택에 침입해 집주인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해당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되며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지강헌은 경찰에게 호주 록밴드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이후 경찰특공대원의 총을 맞아 몇 시간 뒤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지강헌이 인질극 과정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3. 최갑복
절도, 성폭행 등 수십건의 범죄를 저질렀던 최갑복은 2012년 출소 후 대구 효목동의 한 건물에서 불법 유사 휘발유를 팔았다. 하지만 건물 주인과 마찰을 빚었고 폭행을 행사하다가 검거됐다.
그러나 2012년 9월 17일, 대구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된 최갑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미리 준비해둔 '후시딘' 연고를 창살과 몸에 발라 미끄럽게 만든 뒤 최갑복은 가로 45cm, 세로 15cm 크기의 배식구를 탈출구로 삼았다.
그는 2m 높이의 창살 사이를 지나 유치장을 유유히 빠져나왔으며 탈출한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또한 최갑복은 탈출 전 유치장에 "누명은 벗어야 하기에 선택한 일"이라는 글도 남기는 여유를 보였다.
최갑복은 이 밖에도 1990년 금은방을 털다가 대구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경찰호송버스가 서행하는 틈을 타 쇠창살을 뜯고 불과 20cm 틈으로 탈출한 전적이 있다.
4. 조세형
조세형은 80년대 고위층의 집만 골라 절도를 이어가다가 1983년 4월 구치소로 넘겨지게 됐다.
하지만 구치소로 넘어가기 직전 그는 대낮에 구치감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구치감 복도의 환풍기를 뜯어낸 뒤 탈출했다.
이후 6일간 서울 도심에서 도피 행각을 벌이며 5차례에 걸쳐 절도죄를 저지르던 조세형은 총에 맞고서야 검거됐다.
그는 징역 15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지만 재심 청구를 통해 수감 16년 만인 1998년 출소한 뒤 목사로 살아갔다.
그러고는 일본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다 구속돼 3년 6개월의 형을 살았으며 2013년, 2015년에는 절도죄로 붙잡히기도 했다.
한편 범죄자가 선고를 받기 전 유치장 등에서 탈주할 시 도주죄 또는 특수도주죄가 추가로 적용된다. 도주죄는 1년 이하의 징역, 특수도주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