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장례식 때 아리랑 불러달라"...룩셈부르크 참전용사의 유언 이뤄졌다

인사이트질베르 호펠스 생전 모습 / 사진=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인사이트] 김다솜 기자 = 6·25전쟁에서 생존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가 향년 90세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했다.


9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 따르면 질베르 호펠스씨는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현지에 있는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인사이트한국전 참전 당시 질베르 호펠스의 모습 / 룩셈부르크 국립전쟁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고인은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생전 서재에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유언장을 조카 파스칼 호펠스(62)씨가 발견했고 이를 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에게 알렸다.


룩셈부르크 남동부 레미히 지역에서 거행된 장례식장에서는 그의 유언대로 아리랑이 추모곡으로 울려 퍼졌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국과 함께 한 것이다.


앞서 1951년 5월 입대했던 호펠스씨는 군 복무가 끝나갈 때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다. 이듬해 3월 부산에 도착한 그는 당시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벨기에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에서 생존한 그는 1953년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인사이트작년 10월 질베르 호펠스의 생일파티 당시 모습 / 사진=박미희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그가 참전한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힌다. 호펠스씨 또한 불과 10m 거리에서 적군의 포탄이 떨어져 몇 번의 고비를 넘겨 살아남았다.


호펠스씨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참전 뒤 20여 년 만인 1975년 처음 재방한했을 때를 언급하며 "당시에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과 새로 들어선 많은 건물에 낯선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호펠스씨 부인은 수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유족인 조카 파스칼씨는 "지금으로 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삼촌이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인들이 참전용사의 헌신을 잊지 않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는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다. 호펠스씨가 고인이 되면서 룩셈부르크 내 남은 생존자는 2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