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마라도에 사는 고양이를 대대적으로 포획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천연기념물인 뿔쇠오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일각에서는 뿔쇠오리와 고양이 간의 정확한 인과 관계가 없이 추정치에 의해 고양이를 반출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며 반대했다.
고양이를 받아줄 기관이나 개인이 없으면 대부분 안락사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논란 끝에 마라도에 사는 길고양이 42마리가 제주도로 옮겨진 가운데, 호주에서 길고양이 200만 마리를 살처분한 사례가 주목받는 중이다.
호주는 지난 2015년 고양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최고의 킬러인 고양이로 인해 호주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다는 이유였다.
고양이가 호주에 정착한 건 17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긴 항해를 하면서 선박 안에 쥐들이 늘어났고, 이 쥐들을 잡기 위해 고양이를 태웠는데 이 중 일부가 야생으로 퍼졌다.
별다른 포식자가 없는 호주 생태계 내에서 외래종인 고양이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CNN에 따르면 호주에 사는 포유류 20종이 멸종했다. 호주 환경에너지부는 고양이들이 하루 100만 마리 이상의 조류와 170만 마리의 파충류를 헤치고 있다고 봤다.
호주 정부는 생태계 보호를 명분으로 고양이 200만 마리를 살처분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논란을 부추겼다.
동물 애호가로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와 영국 가수 모리세이는 길고양이 도살 계획을 비판하며 철회를 요청했다.
생태학자 팀 도허티 호주 다킨대 교수는 "길고양이가 호주 토대동물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살처분의 과학적 근거는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생동물 서식지 감소 등 더 민감한 원인은 고려하지 않고 고양이를 무작위로 죽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약 200만 마리의 고양이를 살처분한 뒤 최근 호주 토종 동물들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20년 ABC Australia에 따르면 고양이 살처분 정책 이후 드라이안드라 우드랜드 국립공원에서 멸종 위기에 있던 주머니개미핥기 개체수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반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양이가 사라짐으로 인해 들쥐 등이 늘어나면서 야생조류의 알 등을 포식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호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길고양이를 살처분하고 있다. 교토와 와카야마현에서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5만엔의 벌칙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에리조나의 유마, 미네소타의 밀란 등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불법으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주 사례를 한국에도 도입해 고양이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호주와 한국의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지역의 고양이를 모두 살처분하면 '진공 효과'로 인해 다른 지역의 고양이가 유입돼 결과적으로 개체수 조절이 힘들어지고, 쥐가 늘어나 전염병 등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동물학대범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양이가 일으키는 생태계 문제는 결과적으로 사람이 촉발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이 사랑해 증식시킨 결과로 결국 고양이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닌 '사람의 선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 있게 논의하고 한국의 환경에 맞는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