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4일(금)

전국의 ‘혜진이’들이 ‘그녀는 예뻤다’에 반한 이유


via MBC '그녀는 예뻤다'

"넌 그냥 지금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야. 내가 좋아하는 건 예전에도 너고, 네가 너인 줄 몰랐을 때도 너였고, 지금도 너고 앞으로도 너야“

 
성준(박서준)이 혜진(황정음)에게 건넨 이 한마디는 ‘그녀는 예뻤다’가 준 최고의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혜진이처럼 ‘역변’했어도 나의 존재 자체를 아껴주고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우리이기에.

"거기가 어딘가요?”라고 되물어볼 법한 대학을 다니며, 그나마 있는 경력조차 변변찮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대놓고 눈치를 받는 혜진이가 어렸을 땐 그 누구보다 ‘잘났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찬란하게 ‘예뻤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무엇을 꿈꾸더라도 ‘그래 꼭 자라서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라는 말을 듣던 그 때. 뭘 하든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거칠 것이 없었던 나날.

<어린 시절의 혜진>, via MBC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역변에 역변을 거듭해 있었다. 마음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에 좌절하고, 대학문턱에서 넘어지다가 겨우 대학을 나왔더니 이제는 거대한 취업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전긍긍하는 비정규직 인턴만이 전국의 ‘혜진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분이다. 

“걔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멋진 김혜진은 이제 흔적도 없는데, 이 꼴로 나타났다 더 초라해질까봐 순간 덜컥 겁났어...그러기 싫어서 도망친 거야”

그토록 어여뻤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난 생각보다도 훨씬 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침잠해가는 우리는 성준의 앞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스스로 ‘빼꼼이 누나’를 자처한 혜진이처럼 스스로를 더욱 그늘 안에 숨길 수밖에 없게 됐다. 

via MBC '그녀는 예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혜진이가 더욱 빨리 예뻐지길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혜진이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뭐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으나 너무나 볼품없고 비루해진 나. 혜진이가 예뻐지는 건 그런 나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혜진이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과 박수 속에 예뻐졌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우리를 감동 시킨 건 ‘짹슨이 변하지 않았을 때가 더 좋아’라고 말하는 신혁(최시원)과 ‘네가 너란 걸 몰랐을 때도 네가 좋았어’라고 고백하는 성준의 존재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냥 네가 너라서 좋다’ 그 한마디가 우리에겐 얼마나 절실했던가. 

via MBC '그녀는 예뻤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예쁘지 않다. 언제 예뻐질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대다수가 최소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취직 준비를 하고, 4명중 1명은 결국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만다. 성준과 신혁 같은 존재는커녕 취업을 못해 41.3%에 달하는 구직자는 애인과 이별한다.

'그녀는 예뻤다’ 또한 여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니다. 실상 ‘그녀는 예뻤다’는 기존의 전형에서 시선과 소재를 약간 비틂으로서 성공한, 코믹하고 재밌는, 그런 트렌디 드라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거기서 느끼는 것 역시 저마다의 몫이다.  
 

다만, 우리는 ‘나만 혜진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혜진이에게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결코 온전한 치유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위안이 된다. 예뻤지만 더 이상은 예쁘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느끼는 동질감. 그렇게 우리는 또 살아갈 것이다. 하루하루의 상처를 딛고.

 

김예지 기자 yeji@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