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7일(월)

키우던 소 20마리 산불에 타죽을까봐 도망가라고 풀어준 노부부에게 일어난 기적

인사이트경북 울진군 산불 사흘째인 6일 오전 북면 두천리에서 한 주민이 자신의 집 마당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소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다 / 뉴스1


[인사이트] 전유진 기자 = 경북 울진·강원 삼척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 축산농가에서는 기르던 소를 몽땅 잃을뻔한 노부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 7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울진읍 정림2리 야산 인근에 사는 남계순(72) 할아버지는 5일 밤 12시 30분쯤 휴대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한밤중 할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울린 이는 울진읍사무소 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산불이 집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빨리 대피하라"는 공무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부인 송병자(71) 할머니를 황급히 깨웠다.


순식간에 집을 덮칠 기세인 화마에 부부는 귀중품도 챙기지 못한 채 옷가지만 걸치고 나섰다. 그런데 대문 밖으로 나가려던 때 문득 우사에 갇힌 소들이 떠올라 마음에 걸렸다.


인사이트뉴스1


노부부는 우사로 발걸음을 돌려 소 20마리를 풀어줬다. 집과 우사가 산불에 휘감겨 불이 붙기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끈에 묶인 소들을 풀어주며 우사 문도 활짝 연 뒤 "야들아,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나가거라"고 외쳤더니 소들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나만 살자고 자식처럼 키운 소를 그냥 두고 갈 순 없었다"고 매체를 통해 전했다.


결국 소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뒤 화마를 피해 울진군이 마련한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노부부는 날이 밝자 곧바로 자신의 집을 찾았다.


삶의 터전이었던 2층 집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당에 세워둔 트랙터도 불에 타 앙상한 뼈대만 남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우사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 노부부는 깜짝 놀랐다. 새까맣게 그을린 우사 터에는 전날 밤 풀어준 소들이 모두 돌아와 있던 것이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노부부가 세고 또 세어봐도 어미소 14마리에 송아지 6마리가 모두 살아 돌아온 게 맞았다. 일부는 그을려 있었지만 무사히 살아 집으로 돌아온 소들을 확인하고 노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는 "집도 우사도 모두 타 앞으로 살길도 막막하지만, 그래도 제집이라고 모두 살아 돌아온 소들이 기특했고 뛸 듯이 기뻤다"며 "이제 밤에는 대피소에서, 낮에는 소들에게 수시로 사료와 물을 공급하는 게 일과가 됐다"고 밝혔다.


할아버지는 "소들도 화마에 크게 놀랐는지, 평소와 달리 사람을 보면 빤히 주시하거나 걷는 방향으로 따라 다닌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시민들만이 아닌 동물들도 위험에 처해 구조가 시급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화재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피하기 위해 반려 동물과 농장 동물의 목줄만 풀어주고 대피소로 향했다. 


현재로선 재난 상황에 따른 대피 및 대처 매뉴얼이 없어 동물들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 화마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집을 떠나야만 동물들 또한 집을 잃은 채 도로변을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