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의 전설적 영웅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와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그뿐 아니다. 점토를 빚어 탄생한 엔키두는 아담에 비유할 수 있다. 성경보다 1000년 전에 점토판에 기록되었으니 표절 논란을 일으킬 만하다. 그리스신화도 오리지널을 자처하기 어렵다. 땅의 신에서 바다의 신으로 전락한 엔키 이야기는 포세이돈을 훨씬 앞선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여러 문명의 신화, 종교, 유적 등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양한 문화의 신화들이 표면상으로 서로 다르지만 구조적인 유사성이 있다는 데 주목했다.
서로 다른 신화들이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길가메시 서사시의 엔키두나 구약성서의 아담이 흙에서 탄생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문화에서 인류의 기원은 흙이다.
이는 인간 무의식의 구조, 즉 원형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원형 개념은 인류 역사와 문명이 항상 진보하고 진화한다는 직선적인 사고에 대해 도전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원형은 시간과 개인을 초월하는 추상적인 영혼의 형상이다. 원형은 시공간을 넘어있는 인간 정신의 구조다. 시대와 문화를 거치며 약간씩 변하며 대를 이어 전수된 행동과 감정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본능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도 실은 무의식적으로 원형이 작용한 것이다. 원형이 구체화된 것이 상징이다. 신화, 민담, 전설, 서사시, 의식, 예술 등은 원형이 이미지나 이야기로 구체화된 것이다. ‘따뜻함, 안락함, 부드러움’의 사랑의 원형은 어머니나 성모 등으로 나타난다.
문학, 영화, 게임 등 현대의 문화콘텐츠는 원형(Archetype)을 원천으로 삼아 생산된다고 할 수 있다. 원형이란 오랜 세월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류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는 오리지널 패턴이다.
원형의 실체를 인간은 직접 인식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신화, 민담, 전설, 이미지 등으로 표출될 수 있다. 문화적, 지리적 차이와 관계없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처녀 수태, 홍수 이야기, 지하세계로의 하강과 부활 등이 원형적 이야기다.
이 책은 주로 심층심리학의 관점에서 신화 등을 분석해서 원형에 접근한다.
원형의 역사와 개념을 정리하고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를 설명한다. 또 사랑, 미궁, 삼킴, 디오니소스, 메두사, 마녀 원형에 대해 접근한다. 책은 원형 개념 중에서도 특히 여신 원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