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7일(월)

20년 전 생판 남에게 '신장' 기증하더니, 세상 떠나며 '온몸' 기부한 박옥순 할머니

인사이트사진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신장을 뗀 자리에서 다시 신장이 자란다면 몇 번이라도 더 나눠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신장을 인식하고도 언니에게 거듭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히던 박옥순 할머니. 70세의 나이로 암 투병을 이어가던 끝에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온몸을 기증하고 떠났다. 


지난 20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이달 3일 숨을 거뒀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부하기를 바랐고, 가족들은 이 뜻에 따라 5일 할머니의 시신을 기증했다. 


박 할머니는 47세가 되던 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바 있다. 수혜자는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알지도 못한 타인에게 신장을 나눠 준 '순수 신장기증인'은 국내에서 한 해 2천여 건인 신장 기증 중 10건 미만에 그칠 정도로 극히 드물다. 


2018년에는 전체 신장 기증 2407건 중 4건에 불과했고, 2019년에는 전체 2687건 중 단 1건뿐이었다. 


박 할머니가 신장을 기부한 건 자신보다 6년 먼저 일면식 없는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언니 박옥남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5남매 중 셋째였던 박 할머니는 1991년 어머니를 여읜 뒤 둘째 언니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언니가 신장을 기증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기부했다. 


인사이트사진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본부 측에 따르면 자매가 함께 순수 신장기증인이 된 사례는 박 할머니 자매가 처음이다. 


박 할머니 자매는 신장을 나눠준 후에도 장기기증본부의 신장기증·이식인 모임인 '새생명나눔회'에서 활동하며 장기기증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옥순 할머니가 암 진단을 받은 건 지난 2019년이었다. 위암이 3기까지 진행됐고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된 상황이었다. 


인사이트사진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지난해 3월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한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더는 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임종을 기다리겠다"며 시신 기증 의사를 밝히고 지난해 12월 경희대 의대에 시신 기증자로 등록했다.


박 할머니는 숨지기 하루 전 날에도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써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 한다. 


박진탁 장기기증본부 이사장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명나눔의 거룩한 의지를 보여주신 고인의 듯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이 이어져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