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이승환 기자,박재하 기자 =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48)는 지난해 12월 초 직원 한 명과 함께 '의뢰인'의 집을 방문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16.5㎡(5평) 규모 원룸이었다.
집안이 쓰레기 더미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빈 생수병, 빈 플라스틱 그릇, 빈 치약통, 빈 마스크 포장지, 팽창한 비닐봉투 등 온갖 쓰레기가 방안을 채웠다.
플라스틱 그릇과 도자기 그릇들은 싱크대에 타고 올라가듯 쌓여 있었고 구겨지거나 찢긴 이력서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의뢰인은 취업준비생 김민호씨(가명·20대)였다. 그는 신종 코로노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우울한 감정에 파묻혀 지냈다. 민호씨는 쓰레기가 방치된 집안에서 극단선택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김새별 대표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했지만 민호씨의 집안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였다"며 "쓰레기집은 고독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30 여성 의뢰인 많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인력 3명은 지난해 7월 서울 광진구의 원룸(6~8평 추정)을 방문했다. 의뢰인은 회사원 박은지씨(가명·20대)였다.
은지씨 집안도 온통 쓰레기였다. 배달음식 그릇, 플라스틱 용기, 스티로폼, 빈 물병, 찌그러진 쇼핑 가방 등이 산처럼 쌓여 세탁기와 싱크대 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쓰레기는 족히 수백개는 돼 보여 개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40)도 "쓰레기집은 '고독사의 전조'"라며 "실제로 거주자가 숨진 채 발견된 쓰레기집을 청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쓰레기집 의뢰인에 대해 "저소득층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기업 직원이나 교수, 주요 항공사 승무원도 있다"며 "20~30대 여성 의뢰인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민호·은지씨 집처럼 버려야 할 것들이 실내에 가득한 집을 '쓰레기집'이라고 부른다. 구더기 수백 마리가 냉장고 안에 득실대거나 배설물 자국이 양변기 곳곳을 뒤덮은 사례도 있다. 코로나 이후 쓰레기집 청소 의뢰는 크게 늘고 있는데, 에버그린의 경우 지난해 접수한 의뢰 건이 전년보다 50%가량 증가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쓰레기집을 강박증이나 우울증이 발현한 것으로 본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2021년 2분기)'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조사 대상의 우울평균 점수는 5.0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우울 2.1점)보다 2.4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가족·지인과 단절돼 우울하고 우울해서 더욱 고립되는 악순환이다. 우울증은 극단선택의 주요 이유이고, 고립은 고독사의 결정적 원인이다. 지난해 1인가구 '660만 시대'를 맞은 가운데 홀로 사는 사람의 복지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안이나 우울증이 심각한 사람 가운데 코로나 영향으로 집밖 외출을 극도로 기피하는 경우가 확인된다"며 "만일 기저질환이 있는데도 쓰레기집에 고립돼 있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국무총리실 산하 자살예방정책위원회 위원)는 "혼자 산다는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극단선택 충동 같은 다른 위험 요인과 결합했을 때 위험을 증폭할 수 있다"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1인 가구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압도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쓰레기집을 고독사의 전조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위험 가능성까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고독과 외로움'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데 영국은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라는 부처를 만들어 정부 차원에서 예방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독사예방법 유명무실" 비판
한국에서는 지난해 4월 고독사예방법이 시행됐으나 "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다. 고독사예방법의 핵심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실태조사를 진행해 예방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 시행 9개월 지난 현재까지도 실태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다. 복지부는 올해 고독사예방법 관련 예산으로 16억원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 검토에서 이마저도 감액돼 10억원으로 확정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고독사 관련 공신력 있는 통계나 실태조사가 없어 고독사예방법을 근거로 올해 상반기 실태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며 "아직 법 시행 1년이 되지 않아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고독사 우려 보도가 잇따르는데도 법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