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삶에 지친 한국인들이 영화 '인턴'에 열광하는 이유

via 영화 '인턴' 스틸컷 

 

회사 생활만 40년. 한때 부사장까지 지낸 70세 할아버지가 신생기업의 인턴 사원으로 들어간다. 

 

입소문을 타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영화 ‘인턴’의 설정이다. 

 

비록 마션의 개봉과 함께 흥행은 주춤하는 모양새지만 인턴은 여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70세 인턴 ‘벤 휘태커’와 앤 헤서웨이가 분한 30대 대표 ‘줄스 오스틴’의 모습을 통해 고용 문제로 세대 갈등까지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via 영화 '인턴' 스틸컷 

 

벤 휘태커는 우리로 치면 산업화 시대, 성공한 샐러리맨의 표본이다. 전화번호부 제조 회사에서 40년을 보냈고 부사장으로 은퇴했다.

 

부족할 것 없는 노년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벤은 은퇴 후 일없이 보내는 여생을 지루하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벤이 스타벅스에 출근(?)해 샐러리맨들 틈에 끼어 신문을 보고, 터덜터덜 거리를 걷는 장면이 나올 때는 은퇴 후 긴 시간을 보내야 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벤처럼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근면성실’하게만 살아오신 부모님들. 

 

하지만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한 후에는 인터넷 중심의, 이전과는 다른 산업구조를 가진 사회에서 또다시 수십년을 보내야 한다. 

 

그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며 제2의 삶을 사실 수 있을까. 

 

via 영화 '인턴' 스틸컷 

 

다행스럽게도 벤은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기반의 벤처 회사에 다시 흡수된다. 

 

그리고 자유분방하면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인 30대 초반의 회사 대표를 완벽하게 모시며 필요할 때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를 전수한다. 

 

눈에 띄는 점은 벤의 이상적인 태도다. 어떤 경우에도 결코 훈계를 하거나 자신의 화려한 경험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자 젊은이들이 벤 옆에 우르르 몰려온다. 

 

사실 매사에 좌충우돌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가치(예의, 근면, 품위 등)를 보여줄 어른이 필요하다. 젊고 창의적인 벤처 회사에도 기업 운영의 기본적 원리를 사내에 흡수시켜줄 경험 많은 사원이 필요하다. 

 

벤은 바로 그 자리를 채웠다.

 

via 영화 '인턴' 스틸컷 

 

그렇게 부사장에서 인턴으로 완벽 전향한 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도 은퇴자들과 젊은이들이 이렇게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상상해봤다. 

 

그러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직장 동료로 존중하는 사고방식은 점점 더 필요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어른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주문하지 않는 법. 젊은이들 역시 어른들을 가까이 하며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배우려 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경직돼 있다. 아직까지 우리 문화에서는 직급과 나이가 '비례'해야 서로 대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via 영화 '인턴' 스틸컷 

 

더구나 당장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모두 기존의 산업 구조에 매달려 갈등이 격화되는 형국이다. 임금피크제와 잡셰어링 같은 얕은 일자리 대책만 놓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편한 일만 찾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경제 성장의 혜택으로 편하게 취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산업 질서도 상당 부분 재편되고 있다. 

 

이런 때 ‘줄스 오스틴’ 같은 젊은 창업주들이 열정적으로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벤 휘태커’같은 은퇴자들이 밑에서 지원하고 받쳐주면 어떨까. 

 

나이 많은 분들이 꼭대기에, 젊은이들이 인턴으로 바글 거리는 기존의 기업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자리 생태계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via 영화 '인턴' 스틸컷 

 

물론 영화 ‘인턴’은 감독 낸시 마이어스 식의 판타지로 해석될 여지도 많다. 

 

그저 훈훈한 70세 할아버지가 삶의 안팎에서 치여 힘들어하는 30대 워킹맘에게 따뜻한 조언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힐링 영화’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비춰가며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은퇴를 앞둔 분들과 새로운 길을 열어보려는 청년들에게 영화 관람을 추천한다.

 

어른들은 은퇴 후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사회 속에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청년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정적인 노력이 필요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은혜 기자 eunhy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