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한 두어 번 하믄 때리고 굴리고 하믄 (옷이) 다 벗겨지고 뭐 없지 뭐. 그 다음에 맨싸댕이[맨몸]를 맞는 거야. 맨싸댕이를 맞아 가지고 그 야구 방맹이로 이렇게 누켜 놓고는[눕혀 놓고는] 가다가 누켜져 있으믄 뭔 배를 그냥 뭔 지금 뭐라고 말할지 몰라. 뭔 두부짝에 쑤시듯 막 그냥 찔러요. 찌르고는 막 코도 비틀고 귀도 잡아 댕기고 젖꼭지도 잡아 댕기고 뭐 다 아래 털도 다 뽑아 삐리고 그러믄 그 다음에는 아주 녹초가 돼서 죽는 거지 뭐, 죽어."
강원도 정선군 사북의 광산노동자들에게 1980년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었다. 임금인상과 노조민주화 등 기본적인 인권 요구에 야만적인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 '빨갱이'라는 딱지까지 붙였으니 말이다. 마치 광주학살의 전야를 방불케 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은 힘없는 광부와 부녀자들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사북항쟁과 국가폭력'의 황인욱 저자는 "1980년 사북항쟁 시기에 공권력이 저지른 폭력은 그 비열함과 공공연함, 야만성의 면에서 국가폭력의 종합전시장이라 할 만큼, 우리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래 와서 또 끌고 가. 그리고 왜 저기 가정용 목욕탕이 이래 되어 있잖아. 여기 인제 목욕탕이야 이게, 욕조라고… 욕조 여 갖다 놓고는 주전자에 큰 주전자에다 고춧가루를 타 갖고는 막 갖다 맥여."
당시 정선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았던 피해자들의 증언은 참혹했던 집단 고문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비상계엄 하의 합동수사단은 임시조사실을 차려 놓고 남녀를 한 곳에 몰아넣은 뒤 공개고문을 자행했다.
통닭구이 상태로 각목에 몸을 꿰어 거꾸로 매달리게 한 뒤 구타를 하다가, 다른 공간으로 끌고 가 욕조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가 꺼내기를 반복하며 고문했다. 조사를 마치고 유치장에 돌아와서도 고문이 이어졌다.
임시 조사실에서는 군인들이, 유치장에서는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군기를 잡겠다며 야단법석"이었다. 유치장에서 일어난 학대와 희롱 역시 모든 수감자에게 공개된 노골적 학대행위였다. 사북의 광부들은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일어섰으나 공권력의 탄압과 고문, 감옥 생활로 비인간적인 삶을 살다 죽어갔다.
사북항쟁 고문 피해 당사자 20여명은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주요 당사자인 이원갑 씨와 신경 씨는 계엄포고령 위반 및 소요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재심을 신청해 2015년 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음에도 사건의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어떠한 혜택이나 보상도 못 받고 있다.
황인욱 저자는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북항쟁기에 벌어졌던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오랜 기간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즉시 피해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국가폭력의 피해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가혹하다"면서 "이로 인해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배·보상과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폭력이 발단이자 본질인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시작하고 피해자 구제를 완료할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80년 4월 사북항쟁에 참가한 광부와 부녀자들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잔혹한 폭력을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고발한다. 이를 통해 국가(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구제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