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유진 기자 = 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로 공급난이 지속된 가운데 광주 일부 병원에서 접종이 유효한 잔여 백신을 폐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백신 접종 위탁 기관인 광주시 남구의 한 병원은 최근 한 달 동안 100여 명을 접종할 수 있는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폐기했다.
해당 병원과 인접한 일부 병원들 또한 잔여백신이 발생할 경우 SNS나 백신 예약 사이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접종 대기자를 받지 않고 폐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접종을 하면 1인당 1만 9천원에 이르는 의료수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접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나 오류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잔여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폐기했다.
질병관리청의 지침 변경이 잔여 백신 접종에 대한 일부 병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더욱 부추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질병관리청은 1차 접종 대상자에겐 아스트라제네카 잔여 백신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1차 접종자에게 잔여 백신을 접종할 경우 3개월 뒤 적절한 백신을 접종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지침이었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는 접종 간격이 길어서 2차 접종분 확보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선 잔여 백신 접종 대기자를 찾는 게 끝이 아니라 해당 접종자의 정확한 일정을 조정하는 등 수고가 더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접종 희망자가 많은 화이자나 모더나 잔여백신 역시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병원들의 잔여 백신 폐기 문제가 의무 접종 인원보다 접종 가능 인원이 더 많아지면서 나타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모더나의 경우 1바이알당 10명씩 접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12명까지 접종할 수 있다. 9바이알을 가지고도 10바이알에 해당하는 의무 접종 인원을 확보하게 된다.
의무 접종 인원을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잔여 백신이 생기더라도 접종 대기자를 힘들게 찾아 접종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의료 기관에선 잔여 백신을 최대한 활용해 백신 접종자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일종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지난달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내 백신 접종 시작 후 폐기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26일부터 7월 1일까지 '8886회분' 백신이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폐기 이유로는 접종에 쓸 수 없는 '온도 일탈'이 7667회분으로 가장 많았지만, '접종과정 발생 오류'에 따른 폐기도 113회분을 차지했다.
접종 가능한 백신 폐기 사례를 인지한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지침이 만들어진 6월 말까지만 해도 50대 미만의 AZ 접종은 금지돼 있었다"며 "50대 이상도 2차는 mRNA 백신(화이자·모더나)로 변경하던 중이라 해당 백신을 맞을 대상군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는 12일부터 12일부터 60~74세 미접종자 대상으로 AZ 1차 접종이 다시 시작되는 만큼 멀쩡한 백신을 폐기하지 않도록 지침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