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5일(수)

독립운동에 전재산 150억 바친 사령관 손녀, 노령연금+생활급여 '50만원' 받고 반지하 산다

인사이트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독립운동가 최진동 장군의 가족도 여느 독립운동가 집안처럼 고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최진동 장군은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봉오동 전투'를 이끈 영웅이다. 


보통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홍범도와 김좌진 장군이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들이 속한 대한북로독군부의 사령관은 최진동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최진동은 동생 최운산·최치흥과 함께 중국군에 입대해 군벌 장작림 밑에서 공을 세워 땅을 받았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인사이트지난해 처음 공개된 홍범도 장군(좌)과 최진동 장군(우)의 모습 / YouTube 'KBS News'


이 땅에 공장을 운영하면서 축산업과 무역업 등을 벌인 삼형제는 막대한 부를 쌓았고, 1919년 3·1운동에 이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군 부대를 창설했다. 


운영에 필요한 돈은 땅을 팔아 마련했다. 당시 땅을 팔아 마련된 돈은 5만 원이었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150억 원에 이른다. 


최진동 삼형제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재산을 팔아 임했기에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진동 장군은 광복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로부터 토지를 몰수당했다. 대지주란 이유였다. 이후 뿔뿔이 흩어진 그의 가족들은 오랜 시간 핍박과 가난 속에 살아야 했다. 


인사이트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모택동은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저항하는 이는 학살했다. / GettyimagesKorea


장군의 손녀 최정선 여사는 어린 시절 중국 이곳저속을 다니며 두부공장, 종이공장 등에서 온종일 노동을 해야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국 땅을 밞은 건 2005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때는 지난 2010년이었다. 


정부에서 정착 지원금으로 4500만원을 지급했지만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남은 돈은 2800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서울에서 지하 전세방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방값이 싸다는 소문을 듣고 정착한 곳이 인천의 한 반지하방이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2015년 한 언론에 따르면 최정선 여사의 월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기초생활급여 30만원이 전부였다. 


당시 최정선 여사는 "최진동 장군 손녀라고 써 붙이고 있으면 이보다 나을까 싶다가도 할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될까 봐 그럴 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2020년 국가보훈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독립유공자 후손은 약 1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74.5%가 월 소득이 200만원을 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생활고로 인해 고등교육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한 후손들은 전체의 7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보상, 보훈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