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영화 '춘희막이'
"아들만 하나 낳으면 보내버리려고 했지, 내가 키우고...그럴 수가 없더라. 그럴 수가 없어. 내 양심에..."
본처와 씨받이로 들어온 후처의 동거. 두 할머니는 그렇게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삶을 46년 동안이나 지내왔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는 벌써부터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워낭소리'를 이을 것이라 입소문을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자매나 친구,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두 할머니의 관계는 최막이(90) 할머니가 두 아들을 잃으면서부터 시작된다.
태풍과 홍역으로 아들을 떠나보낸 막이 할머니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김춘희(71) 할머니를 후처로 들였다.
막이 할머니는 아들을 얻고서도 어린 시절 사고의 후유증으로 정신연령이 8~9살 어린아이에 멈춘 춘희 할머니를 차마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막힌 동거'를 시작하게 된 두 할머니는 자식들이 훌쩍 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4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via 영화 '춘희막이'
영화는 두 사람에 얽힌 어떤 신파도, 과잉된 감정도 쏟아내지 않는다. 그저 같이 밭일을 하고, 밥을 지어먹으며, 산책을 하는 할머니들의 평범한 일상만을 풍경처럼 담아내고 있다.
하는 말의 팔 할이 욕에 구박이지만 늘 춘희 할머니의 머리를 손수 빗겨줄 정도로 살뜰히 챙기는 막이 할머니, 그리고 평소 밥 한 그릇 정도는 뚝딱 비우는 좋은 먹성을 지녔지만 막이 할머니가 안 보이면 "할매 보고 싶다"며 우는 춘희 할머니.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두 할머니는 지금껏 지내온 삶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지만 이를 보는 이들의 가슴은 어느샌가 퍽 뭉클해진다.
상대에게 무언가 주면 나도 꼭 받아내야만 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인간관계 속에 공공연하게 자리 잡은 요즘, 아무 대가 없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이들의 마음씨가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까닭이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기보다 한솥밥을 같이 먹는 '식구'로 살아가는 두 할머니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동안 무심히 흘려보냈던 당연함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다.
오는 9월 30일, '얄궂은 인연으로 시작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동행'에 당신도 함께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김예지 기자 yeji@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