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유진선 기자 =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은 우리나라 형법에 규정된 법정 최고형이다.
하지만 실제 사형이 집행된 건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7년이 마지막이다.
20년이 넘게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과거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던 시절에는 일종의 관례가 존재했다. 사형수가 형 집행 전 마지막으로 거쳐가는 의자에서 하는 마지막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뒤 사형대에 선 이들은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남겼을까. 90년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형수들이 남긴 유언들을 모아봤다.
지존파 두목 김기환
1993년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결성된 7인조 범죄조직 지존파는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내세우며 엽기적인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이들은 비밀 아지트에서 납치한 희생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웠고, 담력을 키우겠다며 인육을 먹기도 했다.
1995년 대법원은 지존파 일당의 사형을 확정했고, 그해 11월 초에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집행 전 김기환은 최후로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죄인이 할 말은 없으나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새 인생을 걷는다고 전해달라"며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말도 남겼다.
택시 연쇄강간살인범 온보현
온보현은 1994년 자신의 택시에 탄 여성 승객 6명을 성폭행하고 그 중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미리 장만한 수첩에 살인 계획을 써두고, 동네 뒷산에 구덩이를 파놓는 등 치밀한 범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온보현의 사형은 1995년 집행됐다. 당시 그는 "제 몸을 실험용으로 필요한 데 쓰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서진룸살롱 사건 고금석
고금석은 1986년 발생한 서울 강남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유도대학 출신인 그는 반대파에 속한 조폭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고금석은 수형 생활 중 불교에 귀의해 영치금을 모아 시골 분교에 기부하는 등 사형 집행 전까지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분교 아이들과 바다 여행을 가기로 한 일주일 전 사형당한 그는 "아이들의 바다 여행을 잘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일가족 살해사건 오휘웅
1974년 인천시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던 여성의 남편과 아이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과 오휘웅이 자주 만났다는 주변의 진술의 나오면서 경찰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오휘웅은 재판에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공범으로 지목된 여성이 구치소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재판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오휘웅은 1979년 사형당했지만, 집행 직전까지도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다"며 거듭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저의 유언을 가족에게 꼭 전해 제가 죽은 뒤에라도 누명을 벗게 해 달라.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해 달라. 그리고 나를 거짓으로 고발해 나를 죽게 한 모든 사람들은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