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조세진 기자 = 44년 전 할머니 손을 잡고 남대문시장을 갔던 3살배기 딸은 길을 잃어버린 뒤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딸이 살아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혹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다 보면 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40년을 장사했다.
그리고 최근 딸의 소식이 전해졌다. 길을 잃어버린 딸은 미국에서 살아있었고 코로나19로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화상전화를 통해 생사를 확인했다. 헤어진 지 44년 만이었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는 장기실종자 가족 '언택트 상봉'이 진행됐다.
44년 만에 잃어버린 딸 A씨를 화상으로 만난 어머니 이씨는 스크린을 보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미국으로 입양돼 44년 만에 가족을 찾은 A씨는 어눌한 한국말로 "엄마 예뻐요.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A씨는 만 3살이었던 1976년 6월 외할머니를 따라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같은 해 12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된 A씨는 양부모를 만나 자랐다. 잃어버린 부모를 만날 때까지 그는 자신이 버려진 줄만 알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어머니는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통금시간 넘어서까지 딸을 찾아다녔다. 또 라디오 광고 방송, KBS 아침마당 방송에 출연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 딸을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A씨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어머니는 딸을 잃어버린 남대문시장에서 40년간 장사를 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면 '혹시 내 딸 아닌가'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화면 속 딸에게 "널 잃어버린 곳을 40년 넘게 뱅뱅 돌면서 장사를 했다"라며 "언제나 지나가는 사람마다 너인가 하고 쳐다봤다"라고 말했다.
A씨의 언니는 "아버지는 잃어버린 딸만 그리며 술만 마시다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라는 소식을 전해 누리꾼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들의 극적인 상봉은 재외공관에서도 유전자 채취를 할 수 있게 한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 덕분이었다.
A씨는 미국 보스턴 총영사관을 통해 유전자를 국내로 보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A씨가 어머니 이씨의 친자임이 최종 확인되었다.
딸을 만난 어머니는 "딸을 못 찾았으면 눈 감고 못 죽었을 텐데 이제 소원이 없다"라며 "코로나19가 잠잠해면 빨리 딸을 만나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다"라고 말해 감동을 자아냈다.
한편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는 올해 1월부터 경찰청·외교부·보건복지부가 합동으로 시행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