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원혜진 기자 = 시린 바람이 불어와 콧잔등이 찡해지면 엄마 생각이 난다.
추운 겨울 손발 차갑다며 양말을 겹 켤레 신고 보일러는 절대 틀지 않던 모습.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면서도 자식들 걱정할까 아픈 티 안 내던 얼굴.
그러면서도 내 자식 밥 한 끼 굶을까 걱정돼 금세 따뜻한 국을 끓여주시던 뒷모습 말이다.
유독 추운 날이면 더욱 간절해지는 엄마 생각에 괜히 마음 한편이 사무쳐 오곤 한다. 아래 5편의 시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톡 건드려준다.
엄마, 두 글자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는 이들이라면 오늘은 잊지 말고 안부 전화를 드려보자.
1. 사모곡 -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2.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3. 어머니 - 서정주
애기야......
해 넘어가, 길 잃은 애기를
어머니가 부르시면
머언 밤 수풀은 허리 굽혀서
앞으로 다가오며
그 가슴 속 켜지는 불로
애기의 발부리를 지키고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돌아온 애기를 껴안으시면
꽃 뒤에 꽃들
별 뒤에 별들
번개 위에 번개들
바다의 밀물 다가오듯
그 품으로 모조리 밀려들어오고
애기야
네가 까뮈의 이방인(異邦人)의 뫼르쏘오같이
어머니의 임종(臨終)을 내버려두고
벼락 속에 들어앉아 꿈을 꿀 때에도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은
영원(永遠)과 그리고 어머니뿐이다.
4. 어머니의 편지 - 문정희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5. 어머니란 이름 때문에 - 하영순
때론,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실어서
두 다리 뻗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이를 악물었다
난 내가 아니기에
오던 길 돌아보니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
돌아보지 말자
다시는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저 앞에 펼쳐진 넓은 평원을 행해
달려 보리라
어느 듯 해는 서산마루에
어둠살이 내리기 전에
아직 내겐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