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천소진 기자 = 지난 1967년 8월, 온 국민의 시선은 충남 청양군의 한 광산에 쏠렸다.
광산 125m 지하에는 물 한 방울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갇힌 남성이 홀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누구도 그가 살아서 세상 밖으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약 368시간 만에 남성은 기적처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8월 22일, 막장의 물을 퍼내는 일을 하고 있던 광부 양창선(35) 씨는 동료들과 함께 구봉광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낮 12시 40분경 막장을 받치던 갱목이 갑자기 무너져내렸고 양씨는 동료들을 놓쳐 홀로 갱 안에 갇히고 말았다.
어둡고 추운 갱 안에서 벌벌 떨던 양씨는 내부에 있던 대피소로 몸을 피했고, 해병대에서 통신 업무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 망가진 군용 전화기로 갱 밖의 사무소에 연락했다.
상황을 파악한 사무소는 양씨의 생존을 수시로 확인하며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건드리기만 하면 헐리는 굴 때문에 구출 작업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이프 설치까지 실패해 음식을 전달받을 수 없었던 양씨는 배고픔이라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당초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구출은 점점 늦어졌고, 13일째가 되던 날 양씨는 "참기 어렵다. 차라리 폭파하라"는 말로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 그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린 딸 정애와의 통화였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전해지는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 양씨는 온 힘을 다해 버텨냈다.
딸과 가족, 국민의 염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9월 6일 오후 9시 15분, 무려 367시간 45분 45초 만에 양씨는 극적으로 구출됐다.
175cm에 62kg이던 그의 몸은 45kg까지 줄었지만 탈수 증세를 제외하고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그가 구출되자 국민은 환호했다. 갱도 입구에는 1천여 명의 시민이 몰렸고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전국은 "양창선 만세"가 울려 퍼졌다.
당시 양씨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닉에 빠지지 않고 통신병 시절 특기를 되살려 통신선을 찾아 복구에 성공한 점', '체내 염분농도가 떨어질까 봐 물을 마시는 것도 조절한 점', '해병대 시절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 5~8일 간 버틴 경험이 있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소중한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양씨는 병원 인터뷰에서 가족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양씨는 90세가 가까워진 현재 봉사활동을 다니며 건강하고 밝은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존은 당시 국민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그가 보여준 의지와 정신력, 가족애는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