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오현지 기자 = 지난 3월 제주 해상에서 사체로 발견된 '웃는 돌고래' 상괭이는 배 속에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의 생명을 품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끼를 품어 배가 불룩한 채로 부검대 위에 올라온 이 상괭이는 제주 해상에서 사람이 쳐 놓은 그물에 혼획돼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일 세계자연기금(WWF)은 제주시 한림읍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서울대, 인하대, 제주대, 시민단체 등과 해양보호생물 공동부검 연구를 실시했다.
이날 부검한 해양생물은 제주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된 남방큰돌고래, 참돌고래, 상괭이, 바다거북 등 4개체 총 8마리다.
수의사가 어미 상괭이 배 속에서 새끼를 꺼내 조심스럽게 태반과 탯줄을 잘라내자 온전한 모습의 상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검대 위에서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새끼 상괭이는 길이 65~70cm로, 태어나기 직전의 개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새끼 상괭이는 65cm 크기로 태어난다.
어미 상괭이 폐에서 포말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점을 미뤄볼 때 그물에 혼획돼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전문가 소견이 나왔다.
이 어미 상괭이 배 속에서는 기생충 여러 마리도 함께 발견됐다. 부검에 참여한 김병엽 제주대학교 돌고래연구팀 교수는 "상괭이를 부검하면 이번처럼 기생충이 많이 나올 확률은 20% 정도"라며 "오염이 된 곳에 서식하는 경우나 개체 면역력이 떨어질 경우 기생충이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상괭이는 국내 토종 돌고래로 서해와 남해에 주로 서식하는 종이다. 제주에서는 살아있는 상괭이가 발견된 적은 없으나 매해 30~40마리가 죽은 채 해안으로 떠밀려오고 있다.
제주 해상에서는 2017년 38마리, 2018년 21마리, 지난해 45마리 올해는 6월 기준 17마리의 상괭이 사체가 발견됐다.
이날 동시에 부검이 진행된 남방큰돌고래 역시 그물에 혼획돼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남방큰돌고래 위장 등에 남아있는 먹이 상태로 볼 때 전반적인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그물에 걸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제주에서만 서식하는 토착종으로, 현재 약 120여 마리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도 준위협종으로 분류됐을만큼 각별한 보호가 필요한 종이다.
참돌고래는 등 쪽에서 시퍼런 멍과 출혈이 확인돼 어선에 부딪혀 폐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졌다.
결국 이날 부검대 위에 오른 해양생물보호종 모두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사람이 쳐 놓은 그물에 혼획돼 죽은 고래류는 총 9372마리에 이른다.
김 교수는 "최근 제주 해상에서 혼획 등으로 죽은 해양보호생물종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라며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제주해경청과 제주도 지원 통해 부검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부검을 총괄한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해양보호생물종은 바다의 건강을 알 수 있는 간접적인 지표"라며 "제주 전역 해양생태계 건강을 위해 보전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계자연기금은 21일 같은 장소에서 바다거북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계획이다.